“한국메세나협의회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일본에선 기업이 문화예술을 지원하면 어떤 혜택을 얻을 수 있는가?’ ‘메세나 활동의 결과를 어떻게 수치로 나타내 기업을 설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한국에선 메세나의 반대급부를 굉장히 중시하는 것 같다.”

일본기업메세나협의회를 비롯해 친분이 있는 일본 문화예술계 관계자를 만났을 때 자주 듣던 이야기다. 한국 관계자들의 이런 질문에 일본 관계자들은 "일본 기업들은 대부분 메세나 활동의 결과를 수치로 바로 나타내기는 어렵지만 기업이 속한 지역 사회에 공헌하고 장기적으로 회사의 이미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메세나(mecenat)’는 기업이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활동을 통칭한다. 단어의 유래가 되는 고대 로마의 정치가 가이우스 마에케나스부터 시작해서 근대 메세나의 대표적 주자로 꼽히는 이탈리아 메디치가에 이르기까지 메세나는 당대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대가 없이 후원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이후 미국 체이스 맨해튼 은행의 회장이었던 데이비드 록펠러의 주도로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과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해 기업예술후원회가 1967년 발족하면서 기업의 메세나 활동이 본격화됐다.

비영리단체, 지역과 손잡는 일본 메세나

일본의 경우 화장품 회사인 시세이도처럼 1919년 미술관을 세우고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등 메세나라는 말이 정착되기도 전에 문화예술 지원에 앞장서온 기업도 여럿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메세나가 본격화된 것은 1980년대 버블경제 때부터다. 당시엔 ‘○○기업과 함께 하는 전시회’ ‘XX기업과 함께 하는 콘서트’ 등 기업명을 정면에 내세운 화려한 메세나가 성행했다. 기업들은 외국에서 오페라나 오케스트라를 불러오거나 대규모 전시를 가져오는 데 큰손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거품이 붕괴되면서 일본의 메세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굳이 회사 이름을 전면에 내지 않는 수수한 메세나가 전개되는 등 규모는 축소됐지만 저변은 확대되고 다양화됐다. 당시 대규모 문화 행사에 큰돈을 낼 수 있는 회사의 수가 감소된 것도 있지만 고급예술을 계몽적으로 전달하는 이런 활동이 메세나의 전부가 아니라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한 완성된 예술 작품을 소비하는 활동보다 예술의 생산, 즉 창작활동에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메세나의 근본에 가깝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90년 기업메세나협의회가 등장했고, 메세나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일본메세나협의회가 2010년 설립 20주년을 맞아 기업들을 상대로 한 조사를 보면 메세나의 목적으로 사회공헌의 일환(92.7%), 지역사회의 발전(66.5%), 장기적으로 기업의 이미지 제고(58.1%), 예술문화 전반의 진흥(54.0%), 기업문화의 확립(33.0%), 사원의 질적 향상 도모(16.9%), 효과적인 홍보효과(7.1%) 등을 꼽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메세나 활동으로 젊은 예술가 지원, 예술 감상 및 체험 기회의 확대 등에 주력했다. 특히 메세나의 파트너로서 시민, 구체적으로는 비영리단체(NPO)를 선택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있다. 또한 일본 메세나에서 눈에 띄는 점은 지역과의 밀접한 관계다. 예전 메세나의 활동이 단순히 예술을 지원하는 것이었다면 요즘은 교육, 복지, 지역 활성화 등 다양한 분야와 예술을 연결한 ‘복합형 메세나’가 많다.

최근 기업메세나협의회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GB펀드’(문화예술에 의한 부흥지원 펀드)는 일본 메세나의 최근 경향과 맥을 같이 한다. 일본어로 예술(藝術, Geijutsu)의 G, 문화(文化, Bunka)의 B, 펀드와 부흥(復興, Fukkou)을 동시에 의미하는 F를 딴 GB펀드는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재해지역의 예술 활동과 유무형의 문화자원 재생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재해지역에서 NPO의 활동을 돕지만 개인예술가나 예술 애호가 등 시민까지도 지원한다.

그런데, 일본과 비교해 한국의 기업들은 메세나를 사회공헌보다는 홍보마케팅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한국메세나협의회 역시 기업들이 메세나 활동에 나서도록 설득할 때 홍보마케팅 차원의 이점을 가장 먼저 내세우고 있다. 기업들에게 일방적인 자선을 요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기업에 치중된 국내 메세나 활동의 외연을 중소기업으로도 넓히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한국메세나협의회가 메세나 활동의 결과를 수치로 나타내는 계량화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으로 인해 한국의 메세나는 예술의 창조와 젊은 예술가의 지원, 지역의 발전 같은 장기적인 분야보다 단기적이고 언론 노출도가 높은 이벤트를 여전히 선호한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메세나는 엄밀한 의미에서 스폰서십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최근 기업과 예술가의 결연을 돕는 한국메세나협의회의 ‘기업과 예술의 만남';은 스폰서십에 가까운 한국 메세나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런 결연이 아직까지는 체계적이지 않기 때문에 예술가의 성장과 예술단체의 발전, 나아가 지역문화의 진흥에 의미 있는 변화를 초래하지는 못하고 있어 아쉽다.


장지영 필자소개
장지영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동 대학원(미술사 전공)을 졸업했고, 성균관대 공연예술협동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7년 국민일보에 입사해 사회부를 거쳐 문화부에서 오랫동안 공연예술과 문화예술정책을 담당했으며, 2009년 9월부터 1년간 한국기자협회 지원으로 도쿄대학대학원 문화자원학과에서 연수를 받았다. aquajj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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