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획자들이 극단에서 ‘한 번쯤은’ 일해보기를 원하지만, 그들에게는 한번 경험을 쌓는 곳일 뿐 장기적으로 비전을 가지고 일하기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

기획자로서 극단과 함께 작업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공연자들의 작품을 읽어주고, 단체를 운영하고, 관객을 개발하는 것. 이 안에는 공연자와는 또 다른 창작의 레벨이 있고, 밥 먹는 문제를 걱정하고, 날로 변화하는 문화예술 환경과 관객의 요구를 읽어야 한다. 한 마디로 사방으로 촉수를 뻗친 팔방미인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공연단체나 축제사무국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기획자 좀 구해달라”는 말이다. 단체와 시작을 함께 하고 긴 시간 호흡을 맞추는 것은 조직운영에 있어서 특히나 중요한 부분이다. 2003년 극단 몸꼴의 기획 일을 돕다가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살림을 맡아온 신혜원 프로듀서에게 2012년은 몸꼴과 함께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켜켜이 쌓인 시간과 주변 환경에 맞춰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몸꼴의 한 축을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신혜원 프로듀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전문성과 다각화를 위한 전방위 자가발전

&ldquo;어렸을 때 아동극도 하고, 성우를 꿈꾸며 연기를 전공했지만, 기대와 달리 학교생활이 슬럼프에 빠지면서 무대와도 멀어지고 있을 즈음 교수님의 권유로 공연기획을 하게 되었다. 뮤지컬 기획사에서 운영하던 극장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당시 학교에 출강하던 극단 몸꼴 윤종연 대표의 공연기획도 돕게 되었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오르페>를 처음 보았을 때 충격을 받았다. 비주얼도 압도적이었지만 형식도 새롭고 신선했다. 기존의 연극이나 뮤지컬과는 전혀 달랐다. 결국 뮤지컬 기획사와 극단 몸꼴의 일을 병행하다가 본격적으로 극단 몸꼴에 합류하게 되었다.&rdquo;

언젠가는 성우도 하고 싶지만 무대에 서고 싶은 욕심은 없다는 신혜원 프로듀서는 무대에 서고 싶은 욕심이 있으면 기획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기획일은 최전방 현장인 극단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창작의 과정을 이해하고 예술가와 소통하기 위해서 무대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꼭 필요하지만, 각자가 역할을 잘 하기 위해서 서로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다짐인 것이다.

2011년부터 몸꼴은 극단 몸꼴, 몸꼴 상상력훈련소, 문화이끔이 꼴의 독립 체제를 구축했다. 극단 몸꼴이 주로 작품 창작을 담당한다면, 몸꼴 상상력훈련소는 예술교육과 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문화이끔이 꼴은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왜 팀 체계가 아닌 독립단체 체계를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ldquo;한 단체에 오래 있다 보면 배우들은 내 것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까. 오랫동안 함께 해온 이들의 위치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각자가 하고 싶어 하고 잘 할 수 있는 &lsquo;역할&rsquo;을 만들게 되었다. 기획부터 분리했고, 구성원들은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극단 몸꼴 공연팀장으로, 상상력훈련소 대표로 역할을 확장하고 재정도 분리하여 책임운영으로 전환했다. 그러자 모든 단원들이 작품 제작뿐만 아니라 조직적인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단체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 같다. 나 역시 극단 몸꼴의 기획자로 있다 보니 다른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 쉽지 않고 다른 작품을 볼 마음을 내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보면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과 내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rdquo;


신혜원 신혜원

몸꼴은 문래동에 연습실과 사무실을 만들고 10명의 구성원이 이끌어가고 있다. 출퇴근 시간과 주5일제 근무를 정착시켰고, 극단 몸꼴과 상상력훈련소의 연습이 시간표대로 돌아가고 있다.

&ldquo;운영진이 구성되면서 주5일제 근무, 휴가 등이 철저히 지켜지게 되었다. 주5일제를 지키니, 구성원들 간에 공연 직전에는 주6일제로 돌리자는 자발적인 요구도 나온다. 매주 운영진 회의와 전체 회의를 통해 필요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현재 문화이끔이 꼴은 1인의 상근 직원과 프로젝트별로 참여하는 객원 스태프 풀로 운영된다. 많은 기획자들이 극단에서 &lsquo;한번쯤은&rsquo; 일해보기를 원하지만, 그런 기획자들에게 극단은 한번 경험을 쌓는 곳일 뿐 장기적으로 비전을 가지고 일하기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극단에서 공연기획을 하기보다는 공공기관 같은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문화이끔이 꼴은 상근 직원이 아닌 몸꼴을 잘 아는 스태프 풀을 구성하고 연간 일정을 공유하며 프로젝트 단위로 함께하고 있다.&rdquo;

<구도>
<오르페우스>

▲▲ <구도>
▲ <오르페우스>

새로운 표현을 찾아가는 여정

10년간 한 단체에 몸담고 동고동락 하기란 쉽지 않다. 어떤 점에서 몸꼴의 작업에 매력을 느끼는지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주제는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ldquo;스스로 주류인 줄 알았는데 비주류였음을 깨달았다. 몸꼴의 작업은 컨셉과 방향부터 함께 논의하고 유통까지 함께 전략을 짜기 때문에 나의 관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몸꼴은 &lsquo;소외&rsquo;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소외받고 있는 것들에 대한 시선, 사회문제, 거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새로운 이야기보다는 새로운 표현에 관심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몸꼴은 2009년부터 &lsquo;몸꼴라주&rsquo;이라는 이름으로 몸꼴의 작업을 총화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격년제로 진행되는 &lsquo;몸꼴라주&rsquo;는 몸꼴의 작업을 되짚어보고 새로운 작업을 개발하는 자리로 몸꼴 단원이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이자 몸꼴이 만났던 예술가들을 초청하는 자리이다. 극단 몸꼴과 상상력훈련소에서는 각자의 워크숍 작업과 작품 개발을 위한 제작비를 지원하고 두세 달 후 작품발표회를 한다. 일명 &lsquo;100만원 프로젝트&rsquo;를 통해 개개인의 자기개발과 팀 역량을 키우는 기회로,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크지는 않지만 작품 소스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스스로가 작가가 되고 연출이 되어 &lsquo;내 작품&rsquo;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좀더 능동적이 되고 소소한 재료구입도 꼼꼼히 비용 조사를 하게 된다. 이러한 품들이 모여 &lsquo;몸꼴라주&rsquo;가 열린다.&rdquo;


몸꼴은 지난 2007년에는 한-네덜란드 합작공연으로 <구도>(Ku-Do)를 제작한 바 있다. 프로듀서인 그녀에게 해외교류는 어떤 매력이 있는지 물었다.

&ldquo;<리어카, 다시 돌아오다>로 해외 초청공연을 했었고, 앞으로도 해외공연을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해외공연을 가는 것은 작품을 널리 알리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의미가 있다. 대부분 해외공연은 개인적인 인맥에 의해 성사되는 경우가 많다. 해외교류에 대한 노하우가 많지 않지만 외부에 의존하기보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려고 한다. 2007년 네덜란드와의 합작공연은 처음이라 어렵고 힘들었어도 나름 좋은 경험이었다. 또 기회가 생긴다면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배우의 힘이 느껴지는 작업이 좋다. 예를 들어 체코의 실험극단 팜인더케이브(Farm in the Cave)의 작품인 <이민자의 노래>는 배우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언젠가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rdquo;

몸꼴이 주로 자신들의 작업을 독자적으로 해왔다면 유랑프로젝트는 예술가와의 연대와 교류에 좀더 방점을 두는 작업이다. 몸꼴에게는 아직 &lsquo;어떤 관객을 만날 것인가&rsquo;보다는 &lsquo;어떤 예술가들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rsquo;가 더 중요해 보인다. 2011년 &lsquo;몸꼴라주&rsquo; 때 시작된 유랑프로젝트는 그러한 의미를 찾아가는 출발이다. 유랑프로젝트는 여러 문화예술단체가 중심이 되어 매년 다른 지역에서 판을 벌려 지역의 환경적 특성뿐만 아니라 이슈와 사회적 고민을 담아내는 축제다. 프리프로덕션 기간에 자료조사와 연구,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공유한 후 이를 바탕으로 각자 자신들의 작품을 창작하는 방식이다.

&ldquo;가끔 개인적으로 다른 축제에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하는데, 그런 곳에서 힘들었던 것이 축제를 준비하고 막상 열어놓으면 스태프들은 지쳐서 예술가들과 함께 즐기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춘천마임축제 때 예술가들과 스태프들이 다 함께 모여 고기 구워먹고 즐기던 기억이 있어 축제를 하고 싶었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함께 즐기는 축제를 만들고 싶다. 유랑축제의 인큐베이팅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유랑프로젝트는 작년에 극단 몸꼴이 주체가 되어 시작했고, 올해는 문화이끔이 꼴의 이름으로 준비한다. 좀더 형태가 갖추어지면 유랑축제 사무국으로 발전시키려 한다.

유랑프로젝트는 기획운영진과 창작자운영진으로 나뉘어 있다. 다섯 명으로 구성된 기획운영진은 객관적 시선과 방향성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 창작운영진은 극단과 개인이 참여하고 있고, 나를 포함한 몇 명의 기획자가 드라마터그, 프로덕션 매니저 등으로 참여한다. 나 역시 무대에 직접 서지는 않아도 함께 연구하고 발표하며 창작자로 참여하는 거다. 유랑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 과정을 함께 하고 나누는 게 좋다. 올 가을 대학로 야외공간 공연을 위해 이미 공간 스터디를 진행 중이다.&rdquo;


유랑프로젝트의 창작단 리스트에 문화이끔이 꼴과 독립기획자의 이름이 있어 흥미로웠다. 공연자와 기획자의 입장이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서로의 역량이 증폭되어 만난다면 분명 또 다른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유랑프로젝트 <녹슨 시간들> 유랑프로젝트 <녹슨 시간들>
유랑프로젝트 <녹슨 시간들>

변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들

신혜원 프로듀서가 맡고 있는 또 하나의 역할은 한국거리예술센터의 사무국장이다. 그녀가 거리예술센터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무국장 일까지 맡게 된 데는 그간의 경험에서 비롯한 필요 때문이었다. 극단 몸꼴의 대형 야외공연이 해외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무대 세트를 새로 만들 수 없어 포기했던 경험이 있다. 국내공연 후 보관할 장소가 없어 무대세트를 폐기를 해버렸고 다시 마련해서 해외공연을 가기에는 예산이 부족했다. 그야말로 &lsquo;거리&rsquo;를 배경으로 만들어지는 큰 규모의 세트가 보관의 문제 때문에 일회용 세트로 사용되어왔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거리예술센터를 만들 때 주요하게 대두되었던 이슈 중 하나가 바로 &lsquo;거리예술 공동작업장&rsquo;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다행히 올해 안산시에서 거리예술제작센터를 준비를 하고 있고, 몸꼴도 안산예술의전당 상주예술단체로 선정되어 야외에 거점공간을 마련해 거리극 제작을 시도해보려 준비하고 있다.

&ldquo;센터 회원들은 대부분 창작자가 많은데, 회원들이 바라는 것은 비슷하다. 우리 작품이 많이 팔렸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거리예술장터도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많은 사업을 가지치고, 센터가 해야 할 일을 찾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거리예술 작품을 엮어서 소개하는, 거리예술센터만이 할 수 있는 마케팅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rdquo;

유난히 &lsquo;밥&rsquo;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신혜원 프로듀서는 기획자로서 프로듀서로서 예술가들에게 밥 잘 먹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꿈 중의 하나도 축제 현장에 찾아가는 &lsquo;밥차&rsquo;를 운영하는 것이다.

&ldquo;언젠가 해보고 싶은 것은 극장 레지던스를 운영하는 것이다. 문래예술공장은 내가 꿈꾸는 레지던스 공간의 좋은 모델이다. 홍콩프린지클럽(Hong Kong Fringe Club)처럼 자유롭게 와서 작업하고 협업하며 놀 수 있는 비주류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 카페 직원도 배우들이 하는 거다. 일하기 싫을 때 카페에서 놀면서 새로운 것을 찾거나 다른 공부를 하면서 활력을 충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물론 돈을 안 받고 밥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최선을 다해 맛있게 대접할 거다.&rdquo;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주방에 들어가 뚝딱 음식을 만들어 내고, 몸꼴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하다는 신혜원 프로듀서는 축제를 만드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곳, 얼굴 보고 밥 먹고 수다도 즐길 수 있는 곳, 그런 &lsquo;밥상 공동체&rsquo;에서 힘이 나온다고 말한다. 조만간 거리예술장터에서 만나볼 &lsquo;밥차&rsquo;에 요리사로 함께 할 기획자와 예술가의 참가 신청이 쇄도할 것 같다.


신혜원은 몸꼴 기획, 문화이끔이 꼴 대표, 한국거리예술센터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하고, 2003년 에이넷 코리아에서 코엑스 아트홀 기획자로 발을 내디뎠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몸꼴과 함께 활동하며 프로듀서로 주요 작업들을 함께 해왔다. 그밖에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등 축제와 공연, 전시기획 활동을 했다.



최순화

필자소개
최순화는 서울프린지네트워크에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문화예술기획을 하며, 다양한 예술가들과 관객을 만나고 예술의 가치와 가능성을 발견했다. 문화예술기획 및 다원예술 연구와 리서치 활동들을 하고 있고, 커뮤니티 시어터에서 일하며 &lsquo;커뮤니티 아트&rsquo;의 가능성과 전망을 모색하고 있다. 독립예술창작포럼 운영진이기도 하다. hohobada@empas.com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