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0일 문화연대에서 주최한 ‘대안을 준비하는 문화정책 월례 포럼’ 첫 번째 행사가 있었다. 나는 이날 기조 발제에서 문화정책의 고유성을 강조한 바 있다. 문화정책은 문화운동이나 문화정치와는 다른 고유한 대상과 방법을 가지고 있다. 문화운동이 이념적인 선언이나 주장이 강하고 문화정치가 권력관계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문화정책은 이념을 제도적 과정을 통해 현실화시키고, 권력관계를 활용하여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국가의 문화정책은 제도와 예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정책의 고유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화정책은 그동안 정치이념과 권력으로부터 차별화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에 종속된 감이 없지 않다. 문화정책이 자기 고유성을 가지면서 현실의 문화정책과는 다른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고민이 필요할까?

나는 문화정책의 가장 중요한 대안적 가치는 ';개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자율적 권리를 최대한 많이 보장하는 것,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 말이다. 이를 위해 두 가지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하나는 ';문화기본법의 제정';이다. 문화기본법은 문화의 가치와 위상의 중요성, 문화적 권리의 헌법적 가치의 재고, 21세기에 문화적 인간, 문화적 삶의 중요성을 담은 철학을 반영해야 한다. 또한 문화기본법의 제정은 문화가 교육, 노동, 복지와 마찬가지로 사회 재생산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인식을 문화기본법이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문화다양성협약의 실천이다. 문화다양성협약은 글로벌 문화의 흐름에서 국지적 문화의 가치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각인시켜며 다른 한편으로 국가경쟁력을 위해 우리 사회가 묵인했던 문화적 독점과 양극화의 폐해를 해소하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문화다양성협약은 2010년 2월 25일에 국회에서 비준되었지만, 사실상 이 협약의 정신이 문화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특히 문화 다양성협약 정신의 기본이 되는 각 국가의 고유한 문화자원을 활성화하는 정책이나, 개인들의 문화적 활동을 보장하고 문화적으로 표현할 권리를 강화하는 조항들은 국내 문화정책의 수립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담아야 할 것들이다. 드라마, 케이팝(K-Pop), 게임과 같이 한국의 문화산업은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국내문화시장은 극소수의 문화자본과 트렌드가 독점하고 있어 문화의 종다양성이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산업 경쟁력 대신에 문화적 향유의 다양성을, 문화민족주의로 대변되는 국가주의 대신에 시민들의 자발적인 삶의 만족을, 경제적 효율성 대신에 문화적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발제를 마치고 토론의 자리에서 주로 논의되었던 것은 그러한 대안적 문화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문화의 거버넌스 governance, 공공경영 체계는 이념 논쟁에 휘말리면서 코드론에 기반 한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방향으로 흘러왔다. 참여정부 초기에 중점적으로 시도하고자 했던 거버넌스 체계도 후기로 갈수록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현재는 거의 사라진 상태로 보인다.

대안적 문화정책을 위한 거버넌스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낡은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문화적 능력과 전문성을 가진 인적 네트워크의 구성, 그리고 정부-민간 사이의 생산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상시적인 협의체 구축이 필요하다. 또한 젊은 문화전문인력의 양성과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사람, 콘텐츠, 인프라의 분배, 그리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행정 체계 구축은 필수이다. 아무리 많은 예산과 아무리 좋은 아젠더가 있어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의 형성과 정부-민간의 거버넌스 체계 없이는 대안적인 문화정책이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다.


이동연 필자소개
이동연은 중앙대 영문과에서 비평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에서 문화이론과 문화정책을 가르치고 있다.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 한국음악사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문화자본의 시대」(문화과학사, 2010), 「대안문화의 형성」(문화과학사, 2010) 등과 공저 「아이돌」(이매진, 20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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