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작가들을 대표하여 좌담회에 패널로 참석하거나 혹은 전반적인 작업환경에 대해 기고를 의뢰 받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참 입장이 난처하다. 작품 말고 다른 방식으로는 자기주장하기 힘들뿐 아니라 그리 똑똑한 축에 속하는 작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들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개인적인 이야기가 다른 작가들에게 누가 될까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지원정책에 대해서 생각했던 몇몇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펼쳐볼까 한다.

작품을 위해 모든 것을 인내하는 ‘신화 속의 작가’라는 캐릭터로는 작가의 입장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지도 않고 그런 모델은 현실적 대안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작가들은 정당하고 합리적인 의견이라 하더라도, 작품의 진정성이나 초월적인 가치가 돈에 의해 퇴색이라도 될까 싶어 쉽게 요구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런데 작가를 둘러싼 미술계나 기업 등은 종종 이러한 상황을 잘 이용하는 것 같다. 작가지원제도에 대한 공통적 문제의식이 있겠지만 작가마다의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예술계도 양극화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일까.

작가들은 종종 지원에 대해서 많은 질문에 직면한다. 무수히 많은 작가 중 극히 일부만이 공적 지원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원제도 자체가 작가들의 경제적 능력을 상실시키는 것은 아닌가. 국민 세금으로 작가 개인을 지원하는 것이 맞는 일인가. 그렇다면 지원의 효과는 있는가. 작가를 지원할 가치가 있는가. 서구의 예술정책에 발맞춰 우리도 작가지원예산을 축소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작가는 지원제도에 기대지 말고 자생력을 갖춰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가능한가. 작가는 상품성을 갖춘 작업으로 시장경제에 맞게 움직여야 하는가. 미술시장에서 살아나지 못하는 작가는 시대가 필요로 하지 않는 예술을 하는 것인가.

예술가는 분명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 작품을 통해서 사회적 담론을 끌어내고, 사회 속에서 필터로 기능하는 것이 바로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이다. 때문에 예술작업은 공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러므로 국가예산으로 작가를 지원하는 일은 가능할 뿐 아니라, 필요한 일이다. 어느 통계에서는 예술인의 80% 이상의 한 달 수입이 200만원 이하라는 결과가 나왔는데, 심지어 그 중 40% 정도는 예술활동을 통한 수입이 아니었다. 기초적인 생활여건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산적인 창작활동이 이루어지기는 힘들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지금의 지원이 작가들의 작업환경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지원제도가 다소 근시안적이라는 데 있다. 때문에 당면한 문제의 해결은 가능할지 몰라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작가를 위한 인프라 시스템을 구축하기는 힘들다. 어찌되었건 우리 미술계가 이같은 지원제도에 의존한지는 거의 10년이 되어간다. 그러니 당장 대안 없이 공적 지원을 축소하거나 없애기 전에 기존의 창작지원에 대한 여러 질문에 대한 합의와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사진

장지아 <작가가 되기 위한 신체적 조건- 넷째,
능동적으로 대처하라!>

불평만으로는 달라지지 않는다

최근 소셜미디어를 기반의 인터넷 환경으로 인해 창작환경에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인터넷은 관객들에게 정보와 취향을 공유하는 역할을 하는 데 그쳤지만,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취향을 넘어 참여와 실천의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이것은 적극적이지는 않더라도 작가들의 창작환경에 변화를 주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공동의 프로젝트를 참여하는 크라우드 소싱의 방식 중 예술가의 창작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크라우드 펀딩이 등장하여 새로운 작가 후원방식이 마련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창작에 대한 크라우드 펀딩이 등장한 것은 불과 3, 4년으로 아직까지 다수의 작가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창작비용을 충당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금액 또한 크지 않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크라우드 펀딩을 재원조성보다는 인지도 있는 작업(작가)에게 홍보기회처럼 제공하는 방식으로 공공에서 활용하는 모습도 보게 된다. 이제 막 시작한 방식이니 장기적인 안목으로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술계의 어려운 현실은 작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독립기획자, 평론가 등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구성원들 역시 아슬아슬한 현실에 놓여있다. 이처럼 대체로 윤택한 작업환경이 아니다 보니 끈끈한 동료애가 생긴다는 본의 아니게 좋은 점도 있다. 처음 함께 활동을 시작한 작가들과의 만남이 15년 가까이 되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훌륭한 작업을 하는지와 상관없이 긴 시간을 두고 응원해주기도 하고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어떤 상황일지 짐작이 가능하다. 징그럽게 힘든 시간을 함께 버티고 지내온 사람들이라 그들의 존재감만으로도 나는 든든하다.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달갑지 않은 변화의 조짐은 작가만이 아닌 모든 미술계를 무기력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혼란의 시기는 그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하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정치의 혼란이 문화예술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 앞으로 한국예술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술계 지원제도가 바뀌고 난 다음에 불평을 늘어나봐야 소용이 없다. 제도는 수정 가능한 것이니 수동적인 태도보다는 미래를 고민하고 예술지원정책에 대한 중요한 입장과 대안이 화두가 되어 반영되길 바래본다.

날이 선 논쟁은 싸움이 아니다. 격하게 맞장 뜨는 아름다운 미술계가 보고 싶다.

장지아

필자소개
장지아는 추계예대 동양화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 미디어아트 전문사를 졸업했다. 대표전시로 《I confess》(갤러리 정미소, 2011), 《Omerta》(시카고 월시갤러리, 2008) 등의 개인전과 《노마딕 레포트-표류기》(아르코미술관, 2012), 《괴물시대 Dissonant Visions》(서울시립미술관, 2009) 등의 단체전이 있다. 현재 아티스트 펜션 트러스트 베이징(Artist Pension Trust Beijing)의 소속작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oooooxxxx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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