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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전쟁이었다. 이 문제가 매스컴에 보도된 최초의 기록은 1996년 7월이었다. 당시 한 일간지에는 &ldquo;한국연극협회에서 국고지원을 받아 연극인들로 구성된 자경단을 조직, 두 명 씩 돌아가며 호객행위 근절을 위한 방범활동을 진행한다&rdquo;고 기록되어 있다. 외설시비로 시끄러웠던 1994년 연극 <미란다>가 법정 공방에 들어가기 전부터 불법 전단 살포와 호객행위가 등장, 이후 2000년대 초반 개그 공연이 대학로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호객행위는 대학로의 건강한 공연문화를 저해하는 주요 문제로 부각되었다.

&ldquo;공연 보러 오셨어요? 가격 궁금하지 않으세요?&rdquo;
(특정 공연을 찾는 관객에게) &ldquo;그 공연은 지금 B팀이 하고 있어서 질이 좀 떨어져요. 이게 비슷한 장르에요.&rdquo;
&ldquo;1시 반, 2시 반, 3시 반, 4시 반, 5시 반, 6시 반&hellip;. 지금 바로 입장하실 수 있어요.&rdquo;
&ldquo;서울연극센터 직원인데요, 공연 안내해 드릴게요.&rdquo;
&ldquo;여기 보시면 예매사이트 1위한 작품이에요.&rdquo;


최근 대학로 내 호객행위가 진화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이름을 사칭하기도 하고, 관객들이 찾는 타 공연은 B팀이 공연 중이어서 수준이 떨어진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다. 온라인 예매처의 순위를 조작해 순간 1위로 랭크된 화면을 캡처해 마치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처럼 호도하기도 한다.

어림잡아도 30~40명이 넘는 속칭 &lsquo;삐끼들&rsquo;은 그렇게 무장하여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혜화역 지하철 입구부터 진을 친다. 티켓 한 장을 팔면 받게 되는 20~30%의 수수료는 그들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로 만들어 &lsquo;판매&rsquo;에만 열을 올리게 만들고 있다. 거리에서 공공연하게 현금거래가 오가고, 간혹 무시하고 지나치는 시민들에게 거침없는 욕설도 날아든다. 그들의 손에 이끌려 공연을 보게 된 관객들은 &ldquo;저런 게 연극이라면 다시는 연극을 보고 싶지 않다&rdquo;는 말을 되풀이하며 대학로를 떠난다. 게다가 그들을 연극인으로 오해하고 있는 시민들은 연극인들의 무질서한 공연홍보(?) 때문에 대학로에 나오기 싫다고 입을 모은다관련기사 본지 166호 통계짚어보기 &lsquo;2011 대학로 연극 실태조사&rsquo; 보기.

한 편의 공연을 만들기 위해 수개월 동안 땀과 열정을 쏟아낸 연극인들이 호객행위로 인해 잠재적인 관객들을 빼앗기는 현실, 공연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며 연극에 대한 반감을 키워가고 있는 관객들이 늘어가는 현실, 바로 2012년 5월 대학로 중심에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현상이다.

왜 대학로만 단속이 안 될까

지난 해 9월 &ldquo;가시는 데가 있냐?&rdquo;고 물으며 술집 웨이터의 명함을 돌리던 청소년을 호객 행위로 단속, 술집 업주에게 과징금 780만 원을 부과한 판례가 있었다. 서울행정법원은 &ldquo;어디 가는지를 묻는 것은 손님을 꾀어서 업소로 끌어들이려는 행위이며 웨이터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한 일이라 해도 술집 주인의 책임이라며 과징금 부과는 정당하다.&rdquo;고 판결했다. 판결의 근거는 식품위생법 내 호객행위 처벌규정 때문이다. 현행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은 위탁급식영업자를 제외한 식품접객업자가 '손님을 꾀어서 끌어들이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lsquo;호객행위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목적의 달성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주점의 종업원인 웨이터 B씨가 청소년을 고용해 호객행위를 한 이상 A씨는 B씨의 행위에 부과되는 제재적 행정처분을 받을 책임이 있다&rsquo;는 법원의 판결은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 왜, 수많은 미사여구와 거짓정보로 관객들을 꾀어내고 있는 대학로 호객행위는 단속의 사각지대에 있을까? 이유는 근거가 없다는 데 있다. 관할 경찰서에서도, 관할 구청에서도, 연극단체에서도 적극적인 대처를 할 수 없는 이유다. 단지 경범죄처벌법에 있는 &lsquo;청객행위금지&rsquo;에 따른 과태료 부과가 유일하다. 그런데 참 어렵다. 과태료는 기껏 10만원 미만이라 눈도 깜짝하지 않고, 그것조차도 처벌을 하려면 호객을 당한 관객이 직접 경찰서에 가서 진술서를 작성해야만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한 일이다. &lsquo;공연홍보&rsquo;라고 잡아떼면 증거불충분으로 처벌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용해 버젓이 자행하고, 결국 대학로 호객행위를 근본적으로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은 공연법 개정을 통한 호객행위 처벌규정을 신설하는 일이다. 오랜 시간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며 호객행위 근절에 앞장서왔던 연극단체들에게 관계기관에서 말하는 자체정화는 현실 가능성이 없다. 공연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일이지 않는가?

지난 4월부터 (사)한국소극장협회가 진행하고 있는 &lsquo;호객행위 근절을 위한 공연법 개정 청원 서명 운동&rsquo;은 그렇게 시작됐다. 혜화역 2번 출구 앞으로 지나는 시민들은 &ldquo;저거 때문에 하는 거죠?&rdquo;라고 물으며 서명한다. 오가며 몇 번씩 호객을 당한 어떤 시민은 &ldquo;안 되겠다. 서명 해야겠어&rdquo;라며 동참한다. 때로 일부 시민들은 앞에서 벌어지는 호객행위와 옆에서 진행되는 서명운동을 바라보며 실소한다. 그 실소에 수긍도 간다.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공연예술의 메카 대학로의 또 다른 풍경이기 때문이다. 대학로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불법 호객행위, 이제 그것은 어떤 정책보다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주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최윤우

필자소개
최윤우는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 연극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장으로 근무했으며,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려고 하는데, 매번 연극이 끝난 후의 술자리에만 남아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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