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입장에서도 제대로 돈을 쓰고 있는지 늘 의문을 표하는데,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복지 솔루션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을 문화예술로 바꿔 보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요즘 내가 기업의 사회공헌 담당자에게 하는 이야기는 ‘사회공헌=복지’라는 공식을 깨라는 것이다.

최근 문화예술계 인근에서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라는 단체의 이름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새롭게 등장한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의 미션은 민간복지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의 사회공헌을 문화예술로 활성화하는 것이다. 기업을 회원사로 둔 메세나협의회와 상당히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공헌을 원하는 기업 대상의 컨설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허인정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 대표를 만나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의 창립 과정과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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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기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의 활동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다만 아직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를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의 소개 부탁한다.

지난 4월 설립 1주년이 됐다.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의 사업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문화예술 사회공헌의 전문성 향상과 확산을 도모, 문화예술계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문화 나눔, 연구조사, 교육, 캠페인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조선일보의 공익섹션 ‘더나은미래’의 대표도 맡고 있다. 더나은미래는 기업의 사회공헌과 책임(CSR),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이슈와 관련해 신문을 발행할 뿐만 아니라 공익 캠페인, CSR 컨설팅 등을 공익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허인정 대표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원래 신문기자 출신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조선일보 입사 이후 경제부에서 주로 근무했기 때문에 경제 전문기자를 꿈꿨다. 그런데, 2003년 인사가 나서 갑자기 사회부로 옮기게 되었다. 그때 사회부에서 맡은 것이 연중기획 ‘마이너리티 리포트’였다. 결식아동,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다뤘는데, 개인적으로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세상을 만났다. 이후 2004년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좀더 확대한 캠페인 ‘우리 이웃’을 3년 반 정도 맡았다. 당시 기사를 쓰는 것 외에 모금 등 다양한 활동을 기획했는데, 2005년 굿네이버스와 공동으로 기획한 ‘루미나리에 자선대축제’는 큰 성과로 기억된다. 당시엔 서울시청 광장에서 루미나리에를 하는 것이나 모금의 성과에 대해 서울시, 기업, NGO 등이 회의적이었는데, 결과는 큰 성공이었다. 이때 이런 프로그램으로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한편으로 소외층을 도울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2005년 말 산업부 IT팀장으로 다시 발령이 났다. 예전의 나였다면 좋아해야 하는데 일이 재미가 없고 괜히 허전했다. 그러던 중에 CJ나눔재단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소외 청소년을 위한 온라인 나눔터로 막 시작한 ‘도너스캠프’의 팀장을 추천해달라는 것이었다. 몇 분 추천했는데 ‘도너스캠프’ 성공에 회의적인지 모두 고사했다. 그래서 내가 하겠다고 나섰다. 어차피 실패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하니까 과감하게 해봐도 욕은 먹지 않겠다 싶었다. 당시 기자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 주변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워낙 내가 한번 마음을 먹으면 앞뒤 생각 안하고 저지르는 스타일이다.

“길들여짐을 거부한다”

CJ나눔재단과 CJ문화재단의 사무국장을 역임했는데, 당시 추진했던 사업은 무엇이었나.

2005년 설립된 CJ나눔재단은 빈곤 아동의 건강한 신체적 성장을 위한 식품지원 복지 서비스인 '푸드뱅크', 가난의 대물림 방지를 위한 빈곤 아동 교육지원 프로그램인 '도너스캠프'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는 '문화나눔'의 세 가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도너스캠프는 CJ의 사회공헌활동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세 활동 중 가장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아동센터, 공부방, 그룹홀 등의 선생님들이 도너스캠프의 홈페이지에 현장에서 필요한 교육 제안서를 올리면 기부자가 직접 제안서를 선택해 기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제안서는 특별하고 복잡한 양식이 필요 없이 간단하게 작성하여 올릴 수 있고, 내부적으로 1차 검토 작업을 거쳐 다듬어져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게재된다. 기부를 원하는 임직원 및 일반인들은 사이트를 통해 직접 수혜자들이 원하는 것을 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CJ나눔재단은 기부자의 기부금과 동일한 금액을 더해 2배로 지원하는 '매칭 그랜드(matching grant)'방식으로 나눔의 문화를 확산하고 있다. 초창기엔 기부자가 CJ 임직원 100여명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2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고 있다. CJ문화재단에서는 CJ영페스티벌과 CJ그림책축제를 기획하고 창작공간인 CJ아지트를 오픈했다. 그림책축제의 경우 국제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CJ문화재단은 설립 초기부터 젊은 창작예술인 지원 사업에 집중했는데, 문화예술계의 피드백도 적극적인 편이다.


CJ나눔재단과 CJ문화재단에서 많은 사업을 기획하고 훌륭하게 정착시켰는데, 왜 그만두고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를 만들었나.

내가 재단에 입사했을 때는 초창기였기 때문에 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이젠 굳이 내가 없어도 될 만큼 잘 운영되고 있다. 게다가 재단에 계속 있으면 익숙한 것에 길들여져 스스로 그 테두리에 갇힐 것 같았다. 특히 재단 사업을 하면서 느낀 것은 기업들이 굉장히 많은 금액을 사회공헌 활동에 쓰고 있는데, 단순 지원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눔재단과 문화재단 양쪽을 해보면서 느낀 것은 기업들이 주로 시행하는 장학이나 복지 지원은 수혜 대상자의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현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변화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은 문화예술이었다. 그래서 복지와 문화예술의 자연스런 결합을 도울 수 있는 네트워크나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기업 입장에서도 제대로 돈을 쓰고 있는지 늘 의문을 표하는데,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복지 솔루션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을 문화예술로 바꿔보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요즘 내가 기업의 사회공헌 담당자에게 하는 이야기는 ‘사회공헌=복지’라는 공식을 깨라는 것이다.

네트워크 간담회

네트워크 간담회

사회공헌 특강 울산소망요양병원 징검다리 도서관
사회공헌 특강 울산소망요양병원 징검다리 도서관

사회적 가치를 위한 모두의 변화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의 사업을 보면 메세나협의회의 역할과 상당 부분 겹친다. 또한 문화예술과 복지를 합한 솔루션으로 문화예술교육 관련 프로그램을 주로 하는 것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사업과도 일정 부분 겹친다.

각각의 지향점이나 포지셔닝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메세나협의회가 기업의 지원을 통해 문화예술의 지속가능성을 이끌어내는 것을 우선시한다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는 주로 지원대상자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있다. 그래서 메세나가 주로 예술단체 또는 예술가와 기업을 연결하고 있다면 우리는 문화예술을 테마로 한 사회적기업, 1인 기획자까지 파트너가 된다. 그리고 예술교육의 경우 워낙 방대하기 때문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의 사업이 해외에서는 메세나의 영역으로 포함돼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메세나협의회가 요즘 주력하는 것은 문화예술 관련 NPO(비영리단체)나 예술단체(가) 등과 함께 지역사회의 교육이나 복지 등에 나서는 ‘복합형 메세나’다관련기사 본지 170호 칼럼 ‘메세나의 의미’ 보기.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와 메세나협의회를 경쟁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업들과 문화예술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플랫폼이 여럿 있으면 좋지 않을까. 게다가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는 기업들의 사회공헌 니즈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특화돼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기업 프로젝트를 6개 진행하고 있는데, 기업이 지원하고자 하는 타깃과 기업이 잘 할 수 있는 것 등을 고려한다. 지역아동센터 아동들에 대한 JP모건의 미술치료 지원, 교보생명과 함께 병원을 상대로 만든 ‘징검다리 도서관’ 프로젝트 등은 기업이나 아동들 모두 만족도가 높았다. 타이틀만 보면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지만 각 프로젝트 안으로 들어가면 커리큘럼이 아주 다르다.

기업들이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하면서 효과성을 수치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나.

기업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돈을 낸 만큼 효과성을 요구한다. 우리가 진행한 프로젝트의 경우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교사나 프로그램 진행자가 안다. 아이들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바뀐 언어, 그림, 표현 등이 모두 평가지표가 된다. 전문가들과 함께 평가지표를 개발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정교하게 고쳐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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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예술계에선 예술은 그 자체로 공공재라는 인식이 강해서인지 정부나 기업이 돈을 지원하지 않으면 분개하곤 한다. 기업뿐만 아니라 예술계도 사회공헌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국 기업들 가운데 문화예술 단체에 돈을 지원한 뒤 대신 티켓을 받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은 문화예술 단체나 기업 이미지 개선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늘 기업의 사회공헌 담당자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기업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도 바뀌어야 한다. 돈 주는 사람 입장에서 예술 작품 가운데 정말 몇 편이나 사회적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예술가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하는 개인적인 활동에 가까운 창작이라면 기업 입장에서는 지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예술단체도 뭔가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이나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본다.

허인정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동 대학 저널리즘학 석사, 홍익대 문화예술경영 석사, 하와이대 제퍼슨 펠로십 과정을 수료했다. 조선일보 경제부, 사회부 기자로 근무한 바 있다. 경제전문 기자의 꿈을 접고 우리이웃네트워크 팀장, CJ나눔재단과 CJ문화재단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대표와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장지영 필자소개
장지영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동 대학원(미술사 전공)을 졸업했고, 성균관대 공연예술협동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7년 국민일보에 입사해 사회부를 거쳐 문화부에서 오랫동안 공연예술과 문화예술정책을 담당했으며, 2009년 9월부터 1년간 한국기자협회 지원으로 도쿄대학대학원 문화자원학과에서 연수를 받았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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