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는 나의 모습은) 늙지 않는 것, 낡지 않는 것, 스스로 객관적인 눈을 가지는 거다. 연극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힘든 것을 보는 건데, 그걸 볼 수 없게 된다면 떠나야 한다. 때론 내가 스스로 객관화하는 눈을 잃어버린 채 지금 나는 잘하고 있다고 해석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항상) 늙지 말고 낡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연극 <슬픈 대호>_극단 차이무, 이다 엔터테인멘트 제공

▲ 연극 <슬픈 대호>_극단 차이무,
이다 엔터테인멘트 제공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난 날, 그는 자신이 출연하는 연극 <거기> 연습을 위해 일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바로 며칠 전 그가 쓰고 연출한 신작 <슬픈 대호> 공연이 막 시작한 터였다. 8월부터 내년 2월까지 이어지는 극단 차이무의 신작과 대표작 세 작품을 연속으로 선보이는 &lsquo;이것이 차이다&rsquo;(이다 엔터테인먼트 공동프로젝트)시리즈에 그는 작&middot;연출(<슬픈 대호>)&ndash;출연(<거기>)&ndash;연출(<늘근도둑이야기>)로 참여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연출가와 배우를 오가며 공연과 연습, 작품 준비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2002년부터 이상우 연출에 이어 대학로의 대표 극단 중 하나인 차이무(차원이동무대선) 대표로서 극단을 꾸려오고 있는 그는 연출가, 극작가, 배우, 그리고 극단 대표라는 1인 4역을 지난 10년 동안 성공적으로 해오고 있다. &lsquo;큰 욕을 먹지 않을 정도&rsquo;라고 표현하는, 하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을 극단 차이무 대표로서의 그의 이야기와 고민을 들어봤다.

연극 인생의 시작 그리고 현재 :
극단 차이무와 이상우 연출

대부분 극단에 있어 대표는 특별하고도 절대적인 존재다. 대표를 중심으로 예술적 지향을 같이하는 이들이 모여 출발했고, 작업을 통해 극단 고유의 색깔과 정서를 구축하고 관객과 소통하면서 극단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때문에 종종 극단과 극단의 작품은 극단 대표와 동일시되어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때문에 어떤 이유로든 극단의 대표가 바뀐다는 것은 극단과 새 대표 모두에게 결코 쉬운 상황이 아니다. 더군다나 송강호, 문성근, 이대연, 박원상, 최덕문, 김승욱 등 쟁쟁한 선후배들이 포진한, 연극계 대표 연출가 중 한 사람인 이상우 연출의 자리를 잇는 차이무의 대표자리라면 그 어려움이 한층 더했을 것이다. 그는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ldquo;처음에는 이상우 선생님이 다른 일을 하면서 같이 가는 거니까 대표라고 생각하지 않고 잠깐 맡는다고 생각해서 기존 체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방법으로 내 작업을 할 수 있는 방법만 찾자고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었다. 헌데 이게 쉽지만은 않더라. 단원들은 이상우 선생님이라는 한 주체, 선생님의 연극관, 연출관이 좋아서 극단에 들어온 거고, 차이무의 기존 명성과 각인이 있는데 나로서는 또 내 방향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이상우 선생님이 작품을 하게 되면 오롯이 이상우 선생님 프로덕션으로 가면서 내가 서포트하고, 내가 연출을 하게 되면 내 방식의 프로덕션을 했다. 그러다보니 10년이 지났더라. 지금도 이상우 선생님을 차이무의 대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뭐 그런 것들은 아직도 부담이다. 뛰어넘기는 해야 하는 데 그런 부분이 쉽지는 않다. 지금까지 내가 한일이 그래도 큰 욕을 먹지는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ldquo;

그가 생각하는 극단 차이무
: 끊임없이 흘러가며 만들어지는 에너지, 기다림, 그리고 가벼움

겸손한 그의 표현에도 불구하고 차이무는 여전히 1995년 시작한 1기 배우들부터 2012년 합류한 후배들까지 이미 TV나 영화에서 이름을 알린 배우부터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막내까지 함께 어울려 공연을 하는 극단이다. 단원들 간의 다양한 차이와 이해를 어떻게 차이무라는 이름아래 하나로 모으며 현재진행형의 극단으로 운영해 갈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ldquo;차이무는 문화가 이런 곳이니까 그런 일들은 하면 안 된다는 식의 룰들만을 생각했다면 이렇게 모여 있기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업이 계속되니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거고 또 모여 있다 보니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문화 같은 것이 생기는 게 아닌가 한다.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거기서 또 새로운 문화가 계속 생기는 것 같다. 차이무의 작업이 정말 재밌고 즐거우면 다른 곳에 있다가도 문득 오고 싶어지는 생각이 들 것이다. 물론 이렇게들 모이는 게 늘 좋지만도 늘 나쁘지만도 않다. 그래도 좋을 때가 많으려면 누군가는 뒤에서 그런 판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인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이 잘 되면 좋은 거 같다. 어느 지역 극단에서 키워서 이제 할 만하면 자꾸 딴 데로 가버려서 단원들을 키우기가 싫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부정적인 게 아니라 상당히 긍정적인 거다. 사람들이 나가고 또 밖에서 사람들이 들어오고 하는 그런 과정이 계속된다는 건 고여 있지 않고 물이 계속 흐르는 거니까, 그 힘 자체를 포기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

연극 <거기>_ 극단 차이무, 이다 엔터테인먼트 제공
연극 <거기>_ 극단 차이무, 이다 엔터테인먼트 제공

▲ 연극 <거기>_ 극단 차이무,
이다 엔터테인먼트 제공

물론 잘하는 배우들은 외부로 커나가고 새로운 배우들은 만들어지는 과정일 때 연극이 참 위험하고 어렵다. 공연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고. 하지만 그게 극단의 정체성인 거 같다. 후배들한테도 기회를 줘야 하니까.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저 친구의 미래에 투자하는 거 그게 극단인 거 같다. 베스트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가는 거고 그 기대만큼을 극단이 부담해야 하는 거다. 그런 면에서 <거기>라는 작품이 좋다. 선배들도 있고 후배들이 그 선배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갈 수 있으니까.&rdquo;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의 운영에 있어 재정문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이다. 극단의 이상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때로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현실적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모든 극단들이 안고 있는 이 고민을 그는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ldquo;극단을 최대한 가볍게 놔둔다. 딱 배낭 하나 정도. 그냥 배낭 하나 메고 걸어 다니다가 한번 풀어놓고 갈 수 있는 정도의 자산만 만들어 두려고 한다. 무거워지면 결국은 체계를 가져야 한다. 내부 에너지가 강해야 체계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나오는데, 체계는 이미 만들어져 있고 에너지가 약해지는 상황이 되면 체계 때문에 작품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반대로 가벼우면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막 하다가 성공하기도 하고 또 아니기도 하고, 일단 해보고 안 되면 걷으면 되지 하는 식으로 자유롭게 작업에 접근할 수 있다. 최소의 경비를 들여서 최소의 실패를 하면 되는 거니까.&rdquo;

차이무는 매년 한 두 작품을 할 수 있는 제작비 정도만을 남기고 수입을 모두 배우에게 분배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적자가 심할 경우 선배 배우들이 기꺼이 출연료를 포기하고 후배들을 챙겨주는 방식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민복기 대표 역시 본인 수입의 대부분을 극단 아닌 외부활동을 통해 충당하고 있다.

작업 속에서 에너지를 찾고 길을 찾다

항상 여유롭고 밝아 보이는 민복기 대표지만 1인 4역으로 극단 일과 외부작업을 병행하면서 지치거나 힘들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 어려움과 스트레스들을 어떻게 푸는 지 궁금했는데, &lsquo;특별한 방법이 없다&rsquo;는 답이 돌아온다.

&ldquo;이번 &lsquo;이것이 차이다&lsquo; 작업 같은 경우 좀 많은 일을 한꺼번에 벌여놔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긴 한데, 그냥 원래 이런 거라고 정하고 나면 괜찮은 것 같다. 애초의 목표가 재미있는 연기나 연출을 해보고 살고 싶었던 거였고 그 일을 해나가고 있는 거니까. 어쩌면 글을 쓰면서 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 게 마치 퍼즐 맞추기 같은 거잖나. 어떤 장면들을 구성해놓고 이 장들을 어떻게 배치하면 효과적일까 생각하고 또 이야기를 앞으로 뒀다 뒤로 뒀다 하는 작업이. 어떤 이들은 심각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스스로를 작품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연출대본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질이 좀 떨어질 수 있지만 배우들과 만나서 변화될 수도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rdquo;

그는 60, 70세 정도가 되면 이상우 연출, 차이무 식구들과 함께 교외에 경로당 극장 같은 걸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주말이면 노인이 된 차이무 배우들이 마을 주민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을 하고 평일에는 젊은 배우들이 훈련을 할 수 있는. 그렇다면 그가 지금 지켜가고 싶고 꿈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ldquo;늙지 않는 것, 낡지 않는 것, 스스로 객관적인 눈을 가지는 거다. 연극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힘든 것을 보는 건데, 그걸 볼 수 없게 된다면 떠나야 한다. 때론 내가 눈이 멀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눈이 멀까 두렵다. 내가 지금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는 데 이것조차 나에게서 나온 거고 스스로 객관화하는 눈을 잃어버린 채 지금 나는 잘하고 있다고 해석하게 될까봐. 그 때는 내가 아니라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탓하게 되니까. 이상우 선생님께서 &lsquo;진실이라는 것이 있는 게 아니라 변한다는 것에 진실이 있는 거다. 그 진실 속에 나를 놔두어야 한다&rsquo;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이상우 선생님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도 늙지 말고 낡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dquo;


민복기 극단 차이무 대표이자 연출가, 극작가, 그리고 배우이다. 대학 연극동아리에서 연극을 시작했고 1996년 극단 차이무 연출부로 입단해 <슬픈 대호>, <행복한 가족>, <양덕원 이야기>, <슬픈 연극> 등을 작•연출했고 <늘근도둑이야기>, <썽난마고자>, <평화씨>, <클로저>, <쉬어매드니스> 등을 연출했으며, <거기>, <예술하는 습관>, <늘근도둑이야기> 등에 출연했다. 2002년부터 차이무 대표를 맡고 있다.


이양희 필자소개
이양희 명동예술극장 공연기획팀장
연세대 국문과 학사, 영국 워릭대 유럽문화정책&middot;경영 석사를 마쳤다. 학전(1996-2006)에서 기획실장으로 극장 프로그래밍과 공연제작 일을 했고, 독일 Grips Theater Berlin에서 극장운영 연수(2004)를 받았다. 2009년부터 명동예술극장 공연기획팀장으로 개관작업을 진행했고 현재 극장 운영, 공연제작, 생활예술사업 등의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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