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이후 일본 내에서 문화 · 교양 · 레저에 관련된 산업이 쇠퇴화 과정에 들어갔다고 판단한다. 공공극장의 목표를 문화상품을 매개하는 소비형 문화시설에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발생장치'라고 하는 적극적 공공시설로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 년에 한두 번 공연을 보는 것으로는 극장의 '생애가치'를 높이기 힘들다. 극장이 지역사회와의 유대관계나 예술이 갖는 힘을 보급하고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목표 수정이 필요하다.

지역문화가 지속적인 화두의 하나임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의 중앙집중형 문화의 폐해를 조정해보겠다고 하는 정책적 관점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비록 최근 들어 지역협력형 사업이라는 정책이 강조되고 있지만 지역에 예산이 조금 더 배분된다고 지역의 현실이 갑자기 달라질 수는 없을 뿐더러 이조차도 중앙의 호혜적인 관점일 뿐이라는 얘기도 많이 나온다. 지역문화 활성화라는 화두는 도대체 어느 지점부터 건드려야 할까?

전국의 문예회관이 이미 160개에 달하고 있고 그 운영예산을 합치면 국내 문화예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개별극장 예산을 따져보면 운영비를 제외한 실제 사업비의 왜소함이 안스러울 지경이다. 그래서 많은 극장이 대관위주로 운영되고 자체기획 콘텐츠를 공급하는 역할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기초지자체의 낮은 문화인식으로 인한 예산지원 부족과 지나친 성과위주의 평가, 관장 중심의 관료주의적 운영,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련 전문인력이 없고 설사 있더라도 교육훈련의 부재해 발전이 더딘 점들이 문제점이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중앙단위의 복권기금지원과 같은 지원대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일시적인 수혈에 불과해 보이고 만성적 빈혈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역의 문예회관들이 지역주민의 삶에 유의미하게 기록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방법으로 적극적 역할을 찾을 수 있을까?


예산만 까먹는 ‘악동’을 어찌할까

최근 일본의 연극평론가, 극장건축가 등이 발로 뛰며 지역의 활성화된 극장을 조사한 사례집을 보며 여러 가지 흥미로운 시사점들을 발견하였다. (『살아 숨쉬는 극장』, 연극과 인간, 2008) 그동안 일본의 문화정책 사례가 많이 거론되기는 했지만 그들의 국민성이나 사회적 환경이 우리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참고만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사례집을 읽다보니 곳곳에서 오히려 우리의 지역극장 상황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참조 이미지 - 다양한 모습의 일본 극장들

일본은 80~90년대에 공공극장 건립 붐으로 2천여 개에 달하는 다목적극장이 생겼는데, 90년대 이후 버블경제가 무너지면서 경상비 절감이 행정과제로 대두되며 극장이 예산만 잡아먹는 골치덩어리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몇 년 전에 일본에는 2천여 개의 극장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막연하게만 ‘굉장하다’라고 생각했었는데 결국 그 엄청난 ‘장치구조물들’이 경제위축으로 인해 예산만 까먹는 악동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도처의 극장들이 직접사업을 줄이고 대관위주로 가겠다고 경영방침을 발표하자 여기저기서 “혼이 없는 대관극장 시대 도래” “다목적홀(극장)은 무목적홀” “상자”라며 무분별한 인프라구축 정책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고 한다. 저자들은 “공공극장은 창조적이라기보다 관리적이며, 예술적이라기보다 교육적이고, 개성적이라기보다 평균적인, 일상적이기보다는 이벤트 적이고, 시민참가형이라기보다는 감상형의 성격이 강하다”라며 신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우리의 지역극장을 접하면서 받은 인상과 유사해서 지나친 단순화에도 불구하고 핵심을 짚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상품 매개하는 소비형 문화시설 벗어나라

그러면 저자들이 지역극장의 대안으로 발견한 10여 개의 극장들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먼저 환경적으로 일본 내에서 문화ㆍ교양ㆍ레저에 관련된 산업이 쇠퇴화 과정에 들어갔다고 판단한다. 그러면서 공공극장의 목표를 문화상품을 매개하는 소비형 문화시설에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발생장치’라고 하는 적극적 공공시설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연관람이나 대관사업이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지만 그 기능을 지역문화의 활성화라는 적극적 역할로 확대해석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일 년에 한두 번 공연을 보는 것으로는 극장의 ‘생애가치’를 높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지역사회와의 유대관계나 예술이 갖는 힘을 보급하고 활력을 넣어준다는 확장성에서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첫째, 운영주체 성격 전환을 들고 있다. 지자체나 행정의 기능을 축소하고 예술가, 비영리단체(NPO), 시민의 참여를 강력하게 결합시킨 열린 조직을 꾸미는 것이다. 둘째, 극장의 공간성을 벗어나 지역사회와의 다양한 관계망을 만드는 것. 이른바 아웃리치(outreach)프로그램의 전면적 도입이다.

사례로 든 소도시 극장의 경우 ‘도시 전체가 극장, 주민 전원이 극장스텝’이라는 취지로 주민이 음악, 연극, 전시회 등을 직접 기획하고 구체화 하도록 과정을 만들고, 주민인 “당신”이 직접 무엇인가를 해보도록 끈질기게 유도하는 운영방법이 반복해서 소개되고 있다. 주민이 기획서, 제안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극장은 10여 명의 전문기획자를 연결시켜 일이 잘 조직되도록 배려해주고, 최종안이 검토되면 사업으로 결정된다. 그러면 제안자인 주민이 기획자가 되고 실행조직이 만들어진다. 이런 식의 활동이 확대되면서 대관신청과 허가 같은 행정 중심에서 지역의 기획자 육성까지 도모하는 활동중심의 장으로 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진다.

아웃리치 프로그램의 경우 ‘아트 캠프’를 예로 든다. 주민이 자발적으로 신청한 작가를 일정기간 초청하게 해주면 초청된 예술가는 10일 내외로 지역에 머물면서 작품을 제작하고 주민과 제작과정을 친근하게 교류하게 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 쿠로베시(市) 극장에서는 주민들이 원하는 성악가를 초청하여 어린이 합창단과 시민과의 음악워크숍, 병원에서의 작은 음악회, 다음 날의 정식공연까지 성의 있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뜨거운 호응을 끌어내었다고 한다. 국내에도 ‘찾아가는 예술활동’과 같은 유사한 사업들이 있지만 시민의 자발적 역할이나 행정과정에서의 시민참여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있다는 점이 근본적인 차이점라고 볼 수 있겠다.


시민참여, 프로그램 기획에서 극장 행정까지

시민들의 예술적 참여확대 외에 행정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소개되고 있다.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의 경우 시설관리직원 5명만이 있고 실질적 사업운영의 대부분은 시민이 직접 운영하는 열린 운영방식으로 유명하다. 중요한 것은 초기 시설계획 단계부터 시민의 요청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킨 것이다. 사적인 이해를 초월한 시민조직이 만들어지고 장기간의 검토 후에 ‘창작의 자유를 보장할 것’ ‘경제적 부담을 가볍게 할 것’이라는 두 가지 요청이 행정기관에 전해지게 된다. 그래서 협의 끝에 24시간 운영이라는 파격적 운영방침이 등장한다. 그래서 음악연습실의 스튜디오가 저녁 6시부터 아침 6시까지의 이용율이 56%에 달하는 독특한 사례를 낳게 되었다.

어느 도시를 가나 문예회관의 외형이나 분위기가 비슷한 국내의 여건과는 사뭇 달라 보이기는 하나 일본도 2천 개의 극장 중에 겨우 10개의 특별한 극장을 찾아낸 것이니까 라고 위로해본다. 위의 사례들에서 보이는 열의와 활기를 얻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야 할 것이다. 국내의 지역극장들이 불황의 압박 속에서 남은 자발성마저 잃고 ‘무목적홀’로 전락하기 전에 신선한 의지와 열정이 흐르는 광경을 목격하기를 기대해 본다.


오세형필자소개
오세형은 연극분야에서 연출, 기획, 제작에 참여하였고, 2005년부터 경기문화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만남과 자극을 위한 국제레지던스 프로그램, 젊은예술가 집중육성 등에 관심이 많고 독일의 탄츠하우스같은 현장과 제도와의 흥미로운 만남을 주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술경영 NO.13_2009.1.22], 정보공유라이선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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