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 여수세계엑스포가 끝이 났다.

대부분의 대규모국가행사가 그러했듯, 이번 여수세계박람회 역시 외적 성공개최와 내적 거품론, 완전 무관심, 세 그룹으로 확연히 갈렸다.

작년 5월말 쯤, SK M&C에서 제안이 왔다. 여수세계박람회 거리문화공연사업에 컨소시엄을 구성, 같이 참여해보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풍운의 꿈을 꿨다. 이런 대규모 국가행사에서 항상 소외되었던 국내, 해외 예술가들과 멋진 판을 만들어보겠노라고…

TBWA와 SK M&C, 춘천마임축제 3사가 공동컨소시엄으로 사업에 입찰, 선정되어 춘천마임축제는 초기기획, 프로그래밍, 공연진행 등 전체사업을 총괄하게 되었다. 개·폐막제, 해상쇼 등 대형 제작공연이 아닌 다양한 국내외 단체들의 참여가 가능한 거리공연이었기에 다양하고 재밌는 콘셉트가 가능하리라 여겨졌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공연을 기획하였다.

그랑드페르손느
팀퍼니스트 듀오스트라코프 1 듀오스트라코프 2

▲▲▲▲ 그랑드페르손느
▲▲▲ 팀퍼니스트
▲▲ 듀오스트라코프 1
▲ 듀오스트라코프 2

1. 전시장 밖 이동 및 대기열 관객을 위한 ‘쿠드류드(Kud Ljud)’, ‘엑스 큐즈’의 소규모 이동형 공연
2. ‘그랑느페르손느’, ‘NWSI’, ‘컴퍼니위드볼스’, ‘사우러스’ 등 대형 퍼펫 이동형 공연
3. 저글링챔피언 ‘알란슐츠’, 디아블로 챔피언 ‘야베 료’, ‘카나코프’, ‘퍼니스트’, ‘마린보이’, ‘김찬수’, ‘롭록’, ‘시르코악티보’, ‘아마루’ 등 다이도게이월드컵 챔피언 및 국내외 거리광대들의 서커스
4. ‘우금치’, ‘갯돌’, ‘들소리’의 전통 공연 및 ‘고도’, ‘사랑하면 춤을 춰라’, ‘라이온댄스시어터’ 등 광장형 공연
5. 여수세계엑스포의 주제인 ‘물’을 활용한 ‘아크로부포’, ‘필통’, ‘아반티 디스플레이’의 공연
6. ‘상상발전소’, 프로젝트 그룹 ‘날다’의 장소 특정형 공연

여기에 엑스포장의 특성 및 관람객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70여 동구권 아티스트를 선발, 상설 공연팀을 구성하여 총 17개 포스트 및 광장, 거리에서 일일평균 35개 팀 126회의 공연을 구성하였다. 또한 젊은 뮤지션들의 유스밴드 공연, 모든 출연진들이 관객과 함께 뛰놀 수 있도록 설계된 ‘합류난장 - 강강술래’까지 5월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93일간 총 12,000회 이상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결과를 놓고 보니 참말 훌륭한 프로젝트인 듯하다. 환상 가지기 딱 좋은 상황. 그러하기에 진행된 과정에 관한 언급은 필수이다. 결과로 드러나지 않는 숱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죽이네 살리네, 피보다 진한 삐짐 등 ‘쿨’하지 못한 과정을 구질구질하게 들춰내봐야 사업의 실 면모가 드러난다. 그런 이유로 제작과정을 잠깐 소개한다.

1. 2011년 5월 말부터 7월 말까지 - 황홀기

일단 65억이란 큰 액수가 황홀했고, 재벌그룹의 돈 버는 시스템이 황홀했고(그들의 PT룸, 회의실, 엑셀활용은 실로 황홀하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일본, 러시아 등 예술축제 출장계획에 황홀했다.

2. 2011년 8월부터 11월까지 - 예감기

65억, 큰돈이 아니더라. 차 포 떼고, 대략 삭감되고 인건비, 운영비 떼고 기업이윤, 일반관리비, 세금 떼니 프로그램엔 절반도 못되게 남고, 절반을 93일로 나누고 그걸 35개 팀 이상으로 나누니… 또한 여수세계엑스포의 집행방식은 기성고 집행방식, 즉 일단 자비 쓰고 쓴 돈 정산 받는 형식이다. SK처럼 대그룹이야 20억, 30억 쓰고 나중에 받아도 괜찮다지만 당장 잔고 0원인 마임축제는? 숱하게 꼬일 미래가 예감되었다.

Tip 1) 국책사업 과업지시서 상 명기되는 ‘20억, 30억 이상의 사업 진행경력’ 이런 경력은 귀사의 신용도에 대한 측정 뿐 아니라 이 정도는 돈 안 받고도 사전 집행 가능한지 귀사의 경제적 능력을 묻는 것입니다.
합류난장-강강술래
관객과 함께하는 공연

▲▲ 합류난장-강강술래
▲ 관객과 함께하는 공연

3. 2011년 12월부터 2012년 5월까지 - 점수매기기

‘서류로 시작, 서류로 끝나고 거기에 사진과 영수증만 남는다.’ 엑스포의 시작과 끝이다. 모든 일이 서류로 정리되어야 하니 공연팀을 선발한 이유가 서류로 있어야 했고 이를 증빙할 조직위원회 감독단의 심사가 숱하게 있었다. 감수성과 바라보는 각도가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 작품에 관한 설명을 장황하게 하다 보니, 얻는 건 작품에 대한 사랑, 잃는 건 A4용지와 시간이더라. 그들이 원한 것은 장비 NO! 무대 NO! 대기실 NO! 음향시스템 최소! 이런 사양을 맞추되 재미와 감동이 있어야 하며, 너무 작은 공연만 있으면 안 되고, 한국초연이었으면 좋겠고, 국가적 엑스포에 자기 한 몸 희생하여 실비만 받고 장기공연 기꺼이 할 수 있으며, 예술성까지 높은 완성된 제품이었다. 두 배수 이상 제안한 공연팀 중, 심사를 통해 위에서 언급한 콘셉트와 맞는 공연이 최종 공연팀으로 낙점되었다.

Tip 2) 예술가 여러분, 사진과 영상은 때론 작품 자체보다 더 중요합니다.
Tip 3) 기획자 여러분, 자신이 기획하는 공연작품의 가치를 때론 당신과 전혀 다른 감성의 소유자에게 설득할 PT기회가 자주 있길 기원합니다.

4. 2012년 5월부터 8월까지 - 싸우기

battle 1) 절대적 ‘갑1-조직위’와 ‘갑1’을 모시는 ‘갑2-대행사’ vs ‘갑’도, ‘을’도 아닌 우리
대행사에게 조직위는 ‘광고주’였고 우리에게 조직위는 ‘공무원’이었다. 현장상황 및 공연예술 잘 모르시는 ‘공무원’의 평가 및 요구가 갑2에겐 수직적·절대적 명령이지만, 우리에겐 수평적·가변적 조율사항이었다. 이런 인식의 차이가 있으니 절대적 명령에 자꾸 토를 다는 우리가 얼마나 이해 안 되셨을까?

battle 2) 찌는 듯한 더위와 오락가락 날씨 vs ';공연자';와 ‘갑’도, ‘을’도 아닌 우리
차라리 순결하도록 더우면 괜찮건만 맑다가 비오다가 찌뿌둥하다가 오락가락하면 공연했다가 철수했다가 실내로 이동했다가 다시 야외로 이동했다가..를 계속 반복했다. 결국 battle 1 반복.

사진
사진
battle 3) 돈 받았으면 해야쥐~ vs 몇 백을 줘도 안 해~

이 두 문장사이에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지 절실히 깨달은 시기이다. 예술가와 예술기획자, 무대감독에겐 돈보다 더 소중한 건 자존심과 그것을 연계하는 수평적 네트워크이다. 하지만 수직적 네트워크가 익숙하신 갑1, 갑2에게 이러한 수평적 구조는 그저 통솔 못하는 무능력으로 비춰질 뿐. battle 1이 또다시 반복되었다.

결국 조직위, 대행사, 예술조직, 세 단체 간의 차이와 커뮤니케이션 방식, 업무진행에 대한 다른 인식, ‘갑’과 ‘을’에 대한 인식의 차, 공연예술에 대한 견해의 차, 여기에 공연예술축제와 엑스포 간 성격의 차가 결합되며 누군가는 심한 상처를 받았고, 누군가는 멱살잡이를 했고, 누군가는 민․형법이 오갔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끝났다는 것, 그것도 큰 사고 없이 끝났다는 것.

균형추를 잡기엔 심히 모자란 기획자 탓으로 고생하셨으나 그래도 끝까지 관객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해준 공연자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 드리옵고, 많은 박수로 힘주신 관객여러분께 또한 감사의 말씀 드리오니 찬바람 불 때쯤, 웃으며 소주 한 잔 하시다가 노래 한 곡조 뽑으시길… ‘여수밤바다~원 샷!’

강영규

필자소개
놀이패 우금치 배우 겸 기획실장으로 근무.
춘천마임축제 운영팀장, 기획실장 근무.
여수세계엑스포 거리문화공연 공연총괄 감독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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