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2년 8월 28일(화) 오후 3시 장소 : 서울문화재단 사무실


연초 유력한 문화예술 지원기관 가운데 한 곳이 새 대표를 맞았다. 서울문화재단이다. 신임 조선희(52) 대표는 신문기자 출신 소설가, 문화행정가 등 이력이 다채롭다. 영화 전문지 '씨네21'의 초대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태풍 볼라벤이 서울의 가장 근접지역을 통과한다고 예고된 28일 오후 3시, 용두동 재단 사무실을 찾았다. 취임한 지 5개월 이틀 째 되는 날. 수장이 바뀐, 어느 기관이든 이 때쯤이면 초반 태풍은 잦아들고 안정기에 접어들 무렵이다. 그래선지 재단 사무실은 차분했고, 조 대표도 긴장감보다 여유가 넘쳤다.

‘오프닝 시퀀스’를 지나 본론으로

정재왈 편안해 보이신다. 업무 파악은 다 하셨는지?

조선희 다라면 거짓이고 ‘얼추’라는 표현이 맞겠다. 창작공간을 예로 들면, 총 14곳 가운데 3곳은 아직 못 가봤다. 미답지역이 있는 셈이다. 솔직히 지난 5개월은 ‘세계 일주’하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낯선 땅을 탐험하는.

그가 말하는 ‘낯선 땅’은 거쳐 온 이력에서 비롯된다. 잘 알다시피 재단은 공연예술과 문학, 시각예술 분야 지원에 집중한다. 소설가로서 문학 분야는 겹치지만, 전문성이 높은 영화에 비하면 재단의 주 사업 분야는 생소하다. 조 대표는 이를 두고 “커리어가 산만하다”고 표현했다.

사진

정재왈 시간 경과로 보면 낯선 일주는 마무리하고 뭔가 보여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조선희 사실, 취임 이후 미디어와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업 내용을 알아야 구상도 밝힐 수 있으니까. 얼마 전 조직개편을 마쳤으니 ‘오프닝 시퀀스’는 지나간 셈, 이제 본론에 들어가 제 생각을 얘기할 때는 된 것 같다.

정재왈 조직개편 내용을 보면 구체적인 사업도 가늠할 수 있겠다. 결국 조직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니까. 특징이 있다면?

조선희 우선 시내에 산재해 있는 ‘창작공간’과 소속 인력 문제를 개선했다. 주로 서울시 위탁사업이었던 창작공간 운영을 고유사업화하면서 인력도 정규편제로 전환했다. 고질적이었던 직원들의 고용불안이 많이 해소된 셈이다. 신설 ‘창작공간본부’가 사업의 구심점이다.

정재왈 소문으로 듣자하니, 시장께서 그 분야의 대가답게 후원이나 협찬 등 외부 재원조성을 많이 주문한다고 하더라.

조선희 맞다.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활동, 즉 메세나를 유인하기 위해 ‘문화제휴팀’도 새로 꾸렸다. 이를 선도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활동도 참조하고, 또한 선의의 경쟁도 될 것이다.

조 대표는 재단의 다(중)층적인 문화예술지원 활동에 대해 21세기적인 상상력이 요구되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20세기 아날로그형 사고에 익숙한 세대로서의 푸념을 섞으면서도,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며 강한 의욕과 자신감을 보였다.

정재왈 구체적인 사업 내용으로 들어가서, 가동을 중단한 구의취수장의 ‘문화적’ 활용방안을 놓고 서울시가 고민한다고 들었다. 재단이 주체가 되나?

조선희 시장님의 아이디어로 비롯된 일인데, 재단이 힘을 보탤 것이다. 2천 여 평에다 층고가 높은 공간의 특성 등을 감안해 ‘서커스예술센터’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곧 시장님께 중간보고가 있을 예정이다.

정재왈 서커스? 뜻밖이다. 그건 그렇고, ‘하이서울페스티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조선희 민간이나 관 주도 합해 서울시 축제가 3백 개가 넘는다고 한다. 산만하다, 방만하다는 시장님의 지적에 나도 동감한다. 정확한 성과 평가를 통해 ‘워크아웃’도 가능하다고 본다. ‘축제지원센터’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하이서울페스티벌이 문제인데, 올해는 재단의 축제지원팀 중심으로 치르고 내년부터는 변화가 불가피하다. 명칭을 놓고 시에서 공모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조선희 대표 정재왈 발행인
조선희 대표 정재왈 발행인

정재왈 대표께서 보기에 문화예술에 대한 시장님의 철학은 무엇인 것 같은가?

조선희 조심스런 이야기지만, 문화예술에서도 민간과의 거버넌스를 중시한다. 또한 ‘고급예술’ 못지않게 소위 ‘B급예술’에 대한 관심도 많다. 서커스예술센터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정재왈 현장 예술가들에게 가장 큰 관심은 역시 지원제도의 변화 여부가 아닐까 한다. 통상적인 창작 지원제도도 많이 바뀌나?

조선희 총체적인 재점검, 이게 맞는 표현 같다. 장르, 시기, 대상, 공간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다시 설계할 계획이다. 물론 지원 철학과 전략에 대한 고민이 전제가 되겠다. 내년 사업부터 적용할 것이다.

아무리 잘된 제도라도 적절한 시기에 변화는 불가피하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 변화를 위한 ‘총체적 점검’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 지 자못 궁금하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밝힌 서울문화재단의 변화조짐은 중요한 사항이라 생각했다. 끝으로 조 대표에게 사적이다 싶은 질문을 던졌다.

정재왈 문화행정 일이 본인에게 잘 맞는가?

조선희 부임 한 달 뒤, 서울시의회 업무보고 때 버벅대다 시쳇말로 개망신을 당했다. 어느 분이 ‘그래서 행정하겠냐’며 자격시비를 걸더라. 당시 ‘난 글 쓰는 사람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대답했는데, 지나고 보니 이 일도 재미있다. 어차피 ‘기획된 인생’이 아니니 이대로도 나쁘진 않다. 재미있는 직장, 일 잘하는 유능한 재단을 만들고 싶다.

정재왈 필자소개
정재왈_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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