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를 주제로 전방위적으로 예술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역’이라는 화두를 예술경영의 관점에서 점검해보았다. 불과 2년 사이지만 ‘지역’은 더 이상 중앙의 정책 ‘대상’이 아닌 ‘지역문화분권’의 프레임으로 균형감 있게 살펴봐야 할 ‘주체’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지역과 예술경영’을 주제로, 5대 광역시별로 지역별 문화인프라 및 네트워크 현황을 살펴보고, 지역 예술경영인들의 다양한 의견과 제안을 들어보는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 Ⅱ“를 마련한다. 이번호는 빛고을 광주다. 연재순서 광주 (‘12년 9월) - 대구 (‘12년 11월) - 대전 (‘13년 1월) - 부산 (‘13년 3월) - 인천 (‘13년 5월)

새로운 것을 억지로 하려고 하면 잘 안 보이는데 나중에 돌아보면 내가 해온 일이 새로웠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 …일에서 조금의 차이를 만들어 내고 그 차이가 쌓여 큰 성과로 돌아온 것 같다. 작은 것에 목숨 걸었던 것. 그것이 내겐 큰 힘이었다.

몇 해 전 스마트폰이란 용어가 세상에 등장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삶이 마치 스마트한 삶인 것 같은 사회분위기가 조성되고, 이에 중년층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사용법 강좌가 문화센터에 개설 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상황이다. 이러한 첨단 지향 시대에 ‘손의 가치, 손의 정신’을 말하는,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사람과의 만남은 시골 사랑방에 대한 가슴 따뜻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날로그 감성 북구문화의집 2.0’ 이란 타이틀로 ‘도시 농사 동아리-옥상 농부들’, ‘동네 밥상 프로젝트’, ‘바퀴달린 학교’, ‘전라도 지오그래피’ 등 아날로그 감성 물씬 풍기는 사업들로 가득한 북구문화의집에서 정민룡 관장을 만나 북구문화의집과 함께 걸어온 그의 문화예술 인생사를 들어보았다.

박종철 전공이 임상공학과 인류학이라고 들었다. 북구문화의집과는 어떻게 인연이 이루어졌나?

정민룡 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대학에서 동아리를 들어갔는데 거기가 사진 동아리였고 흥미를 느껴 4학년 때 ‘영상매체 연구소’라는 곳을 들어갔다. 그곳은 주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어 전시와 연구 활동을 하는 곳이었고 적성에 맞아 4년 정도 활동했다. 그때는 내가 사진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해서 그 길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당시 북구문화의집에서 사진과 관련된 프로젝트 《나를 인화해보는 오월전》을 진행하면서 도움을 청해왔고 그 일을 돕는 것으로 인연이 시작되었다. 광주의 오월을 개인의 삶과 연결시킨 작업이었고 당시 기획 콘셉트가 영상매체 연구소의 성격과 맞았다. 인류학을 공부했던 이력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살폈던 일이 그 프로젝트와 맥락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박종철 문화의집 활동 초창기에 진행하셨던 프로젝트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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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룡 2003년 광주민예총과 광주문화포럼이 주관했던 《진곡마을 아카이브 전 : 피난민 촌 아리랑》에 함께 참여했었다. 피난민촌으로 불렸던 광산구 진곡동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영상과 사진, 설치미술 등을 전시하며 해체 위기를 맞은 마을을 보전해보고자 했던 프로젝트였다.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 삶에 대한 이야기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래서 그 이후에 북구문화의집에서 진행한 전시는 《우리 집 살림살이 전》, 《우리 동네 기록사진전》 등 인문학적인 접근을 시도한 기획이 많았다. 당시 관장이셨던 김호균 선생님이 문학을 전공하신 영향도 컸다.

박종철 북구문화의집 하면 공간을 주제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골목, 아파트, 시장, 학교, 지하도 등등 어떤 이유가 있었나?

정민룡 사람과 그들의 삶에 주목하다 보니 그들이 살고 있는 현장으로 나가게 된 것 같다. 지금은 주민참여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보다는 삶의 모습들 속에 문화예술이 녹아 들어가기를 바랐던 일이다. 2004년에 문화예술 활동가들이 주민들과 만나고,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과 함께 놀기도 하고,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이야기도 듣고, 아파트 단지 내에 갤러리를 만들기도 하는 등 마을을 위해 뭔가 이뤄내는 작업을 했다. 그런 일들을 진행해 왔는데 이듬해 문화예술교육이란 정책과 만나 시범사업으로 선정되어 그 일들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문화예술 자체를 몇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풀었다. 공간, 디자인, 역사 등인데 아이들과 함께 공원을 디자인 하고 지하도를 설계하고 학교 교실을 꾸며 보는 일을 했고, 결과물에 집중하기 보다는 아이디어를 펼치고 현실화 시키는 과정과, 함께 뭔가를 이뤄낸다는 것의 중요성 및 의미를 알려주고자 했다. 그것이 최근에 곳곳에서 진행되는 마을 만들기 사업들의 정신과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생각한다.

옥상 농장
북구문화의집이 기획한 다양한 프로그램들

▲▲ 옥상 농장
▲ 북구문화의집이 기획한 다양한 프로그램들

작은 차이가 큰 성과로 돌아오다

박종철 올해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 부탁한다.

정민룡 최근에는 다시 초창기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문화의집 안에서 전축을 틀어놓고 테마뮤직카페를 운영하던 그 시절, 그 모습으로 돌아가 이 시설을 편안한 사랑방 같은 공간으로 만들어 내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 시골 외할머니 집에서 볼 수 있는 손때 묻은 느낌, 정이 있어 늘 가고 싶은 공간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북구문화의집 새 건물이 지어진지 3년이 되었는데 그간 현장위주의 사업들을 펼치다 보니 건물에 대한 애착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느낌이어서 이 공간을 활용하는 사업을 진행하려 한다. 아날로그 감성을 내세운 ‘옥상 농부들’이란 작업은 건물 옥상에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디자인하고 도시 농사라는 공동의 주제로 동아리를 만들어 실제 농사를 지어보게 하는 프로젝트이다. 손을 써서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의 가치를 다시 찾고자 한다.

문화예술 교육도 노작활동을 통한 프로그램 위주로 기획했다. 경험하면서 터득하는 교육, 이것을 담아낸 것이 ‘바퀴달린 학교’다. 이것도 2005년도부터 ‘바퀴달린 학교’라는 이름은 사용해 왔지만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갖추고 정식으로 시작한 것은 올해부터이다. 초등학생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기존 학교와 다른, 예술 철학이 담겨있는 또 다른 형태의 학교인 것이다. 일종의 예술 학교라 생각한다. 문화시설이 학교가 될 수 있고 아이들이 문화의집에서 성장하고 배우고 자란다는 것을 알리는 시도를 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콘텐츠는 대인시장에서 활동하는 작가들로부터 공수해오고 있다. 주말 건축, 땅과 예술, 물건의 재구성, 여행 인문학 등 지역에 있는 문화예술에 대한 철학을 가지 있는 분들과 이끌어 나가고 있다.

박종철 문화의집을 운영하는 예술경영인의 입장에서 한마디 한다면?

정민룡 예술경영이라는 것이 이론적인 부분이 분명 있겠지만 딱 부러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경영이라는 것이 어쩌면 과학적 접근 방법일 수 있다. 어떤 틀이나 시스템이나 최대한 가까운 답을 찾기 위해 구조를 만들고, 원리를 만들고 그 패턴을 찾아 적용시키고 하는 것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더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예술경영은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답이나 패턴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례를 만드는 것. 예를 들어 100가지 사례를 유형이나 패턴으로 나누기보다 각각 독립적인 사례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딱 떨어지는 답이 있는 것이 아닌 만큼 답답해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단지 또 하나의 사례를 남기는 것이라는 사실에 집중하면 좋을 것 같다. 경영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 자체가 모순된 부분이 있는 만큼, 효율성을 찾기 보다는 비효율적인 면 속에 가장 높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경영은 세련된 경영법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수동적이고, 수공예적이고, 구멍가게적일 때 오히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의집에서 효율성을 추구해서 수익을 내야한다고 생각하면 어려울 수 있다. 다행히도 문화의 집은 그런 구조는 아니라서 다른 가치에 집중할 수 있다.

박종철 문화의 집에서 10년 넘게 꾸준히 활동을 해온 비결이 있다면 문화의집 관장으로서 이 분야에 종사하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정민룡 2000년도에 이곳과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이어온 것은 특별한 비결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다른 곳에 눈 돌릴 겨를이 없었다. 이곳에서 하는 일이 좋았고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지내다 보니 어느 덧 세월이 10년을 넘어섰더라. 그리고 현장이 주는 힘이 있다. 나는 그것을 현장의 관성이라 부른다. 현장에 있다 보면 흘러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마치 개미처럼.

북구문화의집에 처음 왔을 때가 서른 살이었다. 당시 아무것도 없었고 어려웠다. 지금도 어렵긴 하지만 그 때는 가장 어려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길게 보라고 하고 싶다. 젊음의 시절은 길다. 급하게 보지 말고 길게 보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경험한 것이 결국 다 도움이 된다. 처음에는 나도 급하게 생각했다. 인사해도 몰라보고, 열심히 하는데 알아주지 않을 때는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쌓이고 노력이 성과로 돌아오니 인정받게 된 것이다. 기회라는 것이 올 때 ‘이것이 기회다’라는 생각을 대부분 못하고 지나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평가해보고 ‘그때가 기회였다’라고 알 수 있는 것 같다. 새로운 것을 억지로 하려고 하면 잘 안 보이는데 나중에 돌아보면 내가 해온 일이 새로웠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 다만 매사에 집중하고 몰입하고 파고드는 성격이 있어 일에서 조금의 차이를 만들어 내고 그 차이가 쌓여 큰 성과로 돌아온 것 같다. 작은 것에 목숨 걸었던 것. 그것이 내겐 큰 힘이었다.


들려오는 소문과 인쇄매체를 통해서만 알고 있었던 정민룡 관장을 처음 만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광주의 전통시장인 ‘대인시장’을 찾았다가 일행 중에 예전에 북구문화의 집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이가 있어 반가운 손인사로 맞아주던 우연한 만남이 시작이었다. 북구문화의집에서 주관하여 운영하고 있는 대인예술시장에서 매월 셋째 주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 야시장이 열린다.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함께하기도 하고, 지역의 예술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들고 나와 소개하기도 하며, 시장골목 교차로에서는 게릴라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 인터뷰를 진행한 날도 마침 야시장이 열리는 날이어서 서둘러 인터뷰를 마치고 총총히 행사장으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대인시장의 명물이 된 ‘셔터 속 장미란 선수’가 오버랩 되었다. 광주 문화예술계를 기운차게 들어 올리는 작은 거인. 그의 힘 있는 저크(jerk)를 응원한다.

정민룡 전남 완도 태생으로 문화예술교육 분야에 관심이 많으며, 북구문화의집 관장으로 다양한 문화예술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현재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 총감독으로도 활동 중이다.


박종철 필자소개
박종철은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였고, 전주종이문화축제 사무국장, 전주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재)익산문화재단 문화예술팀에서 활동하였고 현재 광주에서 모 민간재단 기획실에서 문화기획일을 하고 있다. 커피를 좋아하는 커피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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