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를 주제로 전방위적으로 예술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역’이라는 화두를 예술경영의 관점에서 점검해보았다. 불과 2년 사이지만 ‘지역’은 더 이상 중앙의 정책 ‘대상’이 아닌 ‘지역문화분권’의 프레임으로 균형감 있게 살펴봐야 할 ‘주체’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지역과 예술경영’을 주제로, 5대 광역시별로 지역별 문화인프라 및 네트워크 현황을 살펴보고, 지역 예술경영인들의 다양한 의견과 제안을 들어보는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 Ⅱ“를 마련한다. 이번호는 빛고을 광주다. 연재순서 광주 (‘12년 9월) - 대구 (‘12년 11월) - 대전 (‘13년 1월) - 부산 (‘13년 3월) - 인천 (‘13년 5월)

일시 : 2012년 9월 26일 오전 10시 장소 : 아시아문화개발원 원장실

‘빛고을’ 광주를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만드는 일은 문화예술 관련,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라고 한다. 2004년부터 2023년까지 조성사업에 투입될 예산 총액이 5조3천억 원. 3조원 대 문화체육관광부 한 해 예산을 훌쩍 뛰어 넘는다. 이 사업의 결과, 광주 한복판 4만 여 평 규모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는 5개의 부속 시설이 들어선다. 민주평화교류원을 비롯해 아시아문화정보원, 아시아예술극장, 문화창조원, 어린이문화원이 그것이다. 이 중 2014년 아시아예술극장이 첫 모습을 보인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아시아문화개발원’은 이 공간의 운영 전략을 미리 설계하고 준비하는 일종의 태스크포스(TF)팀, 혹은 싱크탱크다. 이런 막중한 일을 맡은 이가 이영철 계원예대 교수. 백남준아트센터 초대 관장을 지낸, 시각예술 전시기획 전문가다. 사회학(학부)-미학(대학원)-미술사학(미 유학시절)으로 이어진 공부의 궤적을 보면, 스페셜리스트답다.

광주와의 인연

정재왈 광주가 연고지인가?

이영철 그렇지 않다. 물론 인연은 깊다. 15년 전 제2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아 광주와 첫 인연을 맺었다. 미친 듯이, 무진장 일한 시절이었다.

정재왈 마침 비엔날레 시즌이다. 그때 이야기를 조금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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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 지금처럼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이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비엔날레를 이벤트 대신 국제적인 담론 형성의 장으로 만들고자 했다.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를 화두로 던졌다. 서구의 타자(他者)로서 아시아성(性)에 주목했다. 스위스 태생의 전설적인 기획자인 헤럴드 제만을 비롯해 카야트리 스피박, 슬라보에 지젝, 폴 비릴리오, 마틴 제이, 미건 모리스 등 거물급 기획자와 인문·사회학자들을 초청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객관적으로 보건대, 서구 주도의 문화예술판에 과감하게 도전한 신선한 성과였다고 자평한다.

정재왈 서구의 지성계가, 그들의 입맛대로 짜놓은 프레임을 벗어나려는 탈식민주의 논쟁은 식민의 역사를 공유한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여전히 주목할 숙제다. 15년 전 당신이 던졌던 그 질문이 지금도 유효한가? 시차를 두고 당신을 통해 광주가 ‘아시아’라는 단어로 연결된다.

이영철 아시아중심도시라고 할 때, ‘중심’이라는 단어가 주변 혹은 타자를 만들어내는 괴로운 용어다. 이는 탈식민주의의 관점에서 극복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점’같은 말로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정재왈 앞으로 아시아 제국과의 대등한 국제협력을 위해 매우 사려 깊은 시각이라고 본다. 요즘 한국이 좀 잘 나간다고 해서, 우리가 중심입네 아시아의 협력 파트너를 주변(타자)화 하는 일은 서구 프레임의 반복이니까. 어쨌든 내용 면에서 아시아문화개발원이 이를 주목한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아시아에 주목

인터뷰 초반, 다소 부담되는 담론 얘기는 내 의도가 아니었다. 앞서 그가 공부한 궤적에서 짐작하듯이, 이 원장은 그런 지적(知的) 유희를 즐기는 편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책상머리에서만 주절대는 것이 아니라 실천가적인 모습이 더 강렬했다. 그럼, 그의 말대로 “비엔날레와는 규모와 담론 면에서 차원이 다른” 아시아문화전당은 무엇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정재왈 취임 9개월, 구상을 펼칠 때가 됐다. 광주와 아시아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그것도 ‘문화’로 말이다.

이영철 잘 아시다시피 이건 중지를 모아야 할 엄청난 과제이다. 내가 지금 그걸 특정하게 ‘정의(definition)’하는 순간, 문제가 너무 복잡해진다. 그 정의를 과정 속에서 찾고 싶다. 이를 실현할 방법론은 제시할 수 있다. 아시아문화전당은 답이 있는 학습장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은 던지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본다. 이를테면 ‘지식의 박물관’이랄까.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시아의 가까운 과거는 참으로 처참했다. 서구의 식민과 침탈의 역사였다. 반면 근대 이전, 먼 과거에 아시아의 문화는 실로 찬란했다. 나는 근대 이전 ‘상상의 공동체’로서 아시아를 주목한다. 한국이, 광주가 그 찬란함을 현재와 미래 속에서 새롭게 구성하는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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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왈 박물관이라면 흔히 ‘과거’를 연상시킨다. 당신은 그 공간에서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이영철 미래의 세계를 준비하는, 새 시대에 걸 맞는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아시아적인 가치 체계를 강렬하게 담아내는 새로운 개념의 박물관 말이다. 박물관에도 여러 층위가 있다. 당신이 지적한 ‘과거’는 역사박물관으로 충분하다. 현재는 현대사박물관이 맡는다. 미래는 과학박물관이면 족하다. 새로운 개념의 박물관은 이 모두가 융합된 형태, 일종의 유토피아 같은 공간이다. 그곳에서는 끝없는 질문이 답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정재왈 좀 애매모호하긴 하지만, 시간이 해결할 문제라 보고 ‘실체’에 관한 질문은 일단 유보한다. 대신 2년 뒤 개관하는 ‘아시아예술극장’의 운영계획을 말해 달라.

이영철 공급자형 이벤트 중심의 공간은 지양하려 한다. 명품을 골라 자랑하듯 보여주는 공연장은 어느 곳에도 많다. 생산과 소비, 유통이 동시에 이뤄지는, 공급과 소비의 쌍방향성에 주목한다. 앞에서 말한 지식의 박물관으로서 능동적인 지식 생성의 장 말이다. 장르로 치자면, 문화산업적인 시장 가치를 벗어난 ‘비정형적’, ‘비물질적’인 융합형 공연이다. 시각예술과 미디어의 융합을 통합하는 새로운 공연양식의 실험 등이 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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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개념의 아시아예술극장 운영 전략에 부합한 것일까?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은 이 원장 임명과 동시에 벨기에 쿤스텐 페스티벌의 프리 라이젠 예술감독을 이 극장의 초대 예술감독으로 임명했다. 이례적이었다. 그녀의 근황이 궁금했다.

정재왈 프리 라이젠은 당신이 추천한 건가?

이영철 저 외에 여러 분의 추천이 있었던 걸로 안다. 한데, 그게 좀... 여기서 처음 밝히는데, 그 분의 사정상 같이 일 할 수 없을 것 같다. 고문으로 모실 생각을 했지만, 막 출발하는 기관으로서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 컨템퍼러리 공연예술의 새로운 실력자들 중에서 새 인물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아방가르드 보다는 현실적인 통섭에 능한 인물이면 좋겠다.

이 원장은 굵직한 단체와 기관을 거친 검증된 문화예술행정가이지만, 그에게서는 외려 몽상가로서의 모습이 돋보였다. 면전에 대고 ‘경영(자)’ 운운하는 것은 예의 없는 짓 같아서 그만 두었다. 말미 핵심을 짚은 한 마디의 울림은 컸다. “무엇이 중요한 지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이 리더의 첫 번째 덕목”이라는.


이영철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미학을,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제2회 광주비엔날레와 제2회 부산비엔날레 예술감독, 제1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예술감독 등 굵직한 국제적 전시 기획 경험과 더불어 국제큐레이터십 구축의 비전을 추구해 왔으며, 이외에도 다수의 전시를 기획한 바 있다. 2008년 이후 경기도에 설립된 백남준아트센터의 초대관장으로 부임하여 백남준의 재발견과 국제적 위상 강화를 위한 미션을 수립했다. 현재 아시아문화개발원 원장을 맡고 있다.
정재왈 필자소개
정재왈_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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