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을 억지로 하려고 하면 잘 안 보이는데 나중에 돌아보면 내가 해온 일이 새로웠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 …일에서 조금의 차이를 만들어 내고 그 차이가 쌓여 큰 성과로 돌아온 것 같다. 작은 것에 목숨 걸었던 것. 그것이 내겐 큰 힘이었다.

2012 서울아트마켓 (PAMS 2012) 참석차 독일의 슐로스 브뢸린(Schloss broelin)의 디렉터 페터 레게만(Peter Legemann)이 한국을 찾았다. 베를린에서 북쪽으로 120km, 폴란드의 스체친(Szczecin)에서 40km 떨어진 외딴 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이 공연예술 전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1992년 이후에 지속적으로 국제 공연예술계와 네트워킹 하면서 어떻게 지난 20년간을 지내왔는지 물었다. 지난 2009년 경기도립직업전문학교를 리모델링하여 경기창작센터를 안산 선감도에 오픈하면서 2009 레스 아티스(Res Artis) 컨퍼런스 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바 있는 필자는 도심에서 떨어진 공간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대한 경험을 나눌 수 있었다.

역사적 공간임과 동시에 현대공연예술을 실험하는 컨템포러리한 공간

백기영 나는 경기창작센터의 학예팀장으로서 2년 반 정도 근무한 적이 있는데, 경기창작센터도 슐로스 브뢸린처럼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매우 고립된 레지던시 공간이다. 지금은 경기도 미술관에서 일하고 있지만,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나의 이러한 경험 때문에 당신과의 인터뷰를 주선 한 것 같다. 먼저, 슐로스 브뢸린은 1992년에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는 공연예술 전문 레지던시 프로그램인데, 공간 운영 배경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나?

페터 레게만(이하 페터) 나는 슐로스 브뢸린이 처음 시작할 때부터 디렉터를 맡아 지금까지 관리하고 있다. 슐로스 브뢸린은 1233년 로버투스 드 브랄린(Robertus de bralin)의 개인 소유로 시작되었는데, 1375년부터 50여 가구가 몰려 사는 공동체를 이루었으나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동독의 사유재산이 몰수 되면서 농업생산동맹(LPG)으로 통합되어 국가가 관리하는 시스템을 유지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것과 더불어 1992년 새로 설립된 사단법인 슐로스 브뢸린이 이 공간을 임대하게 된다. 1992년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여러 가지 정치적인 변화가 있을 무렵이었다. 일단, 동독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이 서독으로 건너가거나 동독의 시스템도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동독의 메클랜부르크 지역의 경우는 농업을 주로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농업정책도 많이 바뀌어서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았다. 슐로스 브뢸린을 둘러싼 농가에 살던 사람들도 마을을 떠났다. 처음에 우리는 5만 평방미터의 공간을 한 번에 임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일이 성공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백기영 공감한다. 경기창작센터도 개관하면서 5만 6천 평방미터의 공간에 총 8개의 건물을 경기도로부터 위탁 관리를 받았는데, 이를 1차와 2차로 나누어서 리모델링하였다. 지금까지는 3개의 건물만 사용하고 있고, 스튜디오는 총 24개가 만들어 졌다. 올해 12월 2차 리모델링이 끝나게 되면 총 60여개의 스튜디오가 만들어 지는 셈이다. 이 모든 공간들의 운영이 안정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고 또 앞으로도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터 그렇다! 우리의 경우도 처음에는 총 8개의 건물 중에서 2개의 건물만 임대했다. 한 건물은 연습을 위해서 필요했고 한 건물은 잠을 자거나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 화폐로 500마르크(한화 25만원)를 지불했으니 그야말로 저렴한 가격에 공간을 얻은 셈이다. 나머지 공간들 모두를 사용하게 되기까지는 공간운영에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따라야 했다. 프로그램 없이 공간만 덩그러니 만들어 놓았다가는 전체 운영만 방만해 지기 십상이다. 우리의 경우는 외부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다양한 예술가 공동체들이 세미나와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하고 가족단위 참여자들이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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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동유럽 전역에는 슐로스 브뢸린 같은 빈 성이나 역사문화유적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의 문화적 활용에 대해 중요한 사례를 남기게 된 것이다. 1993년 우리가 이 공간 전체를 문화재(Denkmalschutz)로 지정하도록 하였는데, 이와 같은 전략은 이 공간을 지속해서 문화공간으로 유지하기를 희망했던 우리 단체의 꿈을 이루게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상업적인 용도로 임대료를 올려 받으려고 해도 이 공간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레스토랑을 만든다든지 다른 용도로 전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2000년 가을에 이 공간 전체 건물이 사단법인 슐로스 브뢸린의 소유가 되면서 집중적인 리모델링을 진행하였고 지금은 역사적 공간이면서 현대공연예술을 실험하는 많은 예술가들로부터 사랑 받는 공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국경에 인접하고 있는 폴란드 예술가들이나 베를린의 예술가들이 찾아 왔는데, 지금은 전 세계에서 예술가들이 찾는 공간이 되었다. 또한, 지난 2010년에는 PAiR(Perfroming artist in Residence) 네트워크 미팅도 개최하여 공연예술만 전문으로 하는 전 세계 레지던시 공간들을 연결하고 있다. 그 당시 우리는 레지던시 기관들이 모여 ‘협업과 기금마련을 위한 새로운 전망과 방법’을 주제로 토론하였고, 나는 개인적으로 공연예술 기관들의 협력 망을 확대해 나가고 싶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경영자

백기영 그렇다면 당신은 공연예술 계통을 전공하였나?

페터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공연예술 안무가이거나 배우거나 한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다만 공연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경영자인 셈이다. 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었지만, 문화예술기관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경영자가 된 것인데, 예술가들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며 조직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나 같은 사람이 이 일을 대신 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백기영 기관을 운영하기 위해서 필요한 재정은 어떻게 충당하나?

페터 우리는 사단법인으로 총 60명의 회원이 있고 우리 공간을 주기적으로 찾고 있는 예술단체들이 우리들과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폴란드 스체친 극장 파베발크시(Pasewalk), 퀸슬러하우스 하인리히스루, 블랙홀팩토리 등이 있으며, 폴란드와 헝가리 예술가들과 집중적인 교류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주로 연방문화재단(Kunststiftung des bundes)과 유럽연합의 문화지원금을 받고 있는데, 주로 교육프로그램과 사회적인 프로그램에만 관심이 있는 공공기금은 국제교류 프로그램의 지원을 위해서 인색하기 때문에 유럽연합 국가들 간의 유대관계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지원 프로그램들은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과 연결하기가 용이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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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 다양한 예술 활동 그리고 활동의 사회화

백기영 한국의 경우 지역의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이 쉽게 관광사업과 연계되어 예술가들이 지역발전에 기여해야한다든지, 레지던시 공간들이 관광객들의 방문지가 되도록 하는 등의 정책이 많은데, 슐로스 브뢸린의 경우는 이러한 요구에 직면하는 경우는 없었나?

페터 실제로 슐로스 브뢸린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바닷가 근처도 아니고 내륙에 위치하고 있으며 라이프찌히나 드레스덴처럼 동독지역 중에서도 도시적이고 거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 아니라서 관광객들이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조용하고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마을이라서 예술가들의 휴식과 창작에는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겠다.

백기영 또 다른 경우,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과의 관계나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는 경우는 있는가? 한국의 경우는 도시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특히 농어촌 지역에서는 예술이 너무도 생소할 뿐 아니라, 동시대예술은 아주 난해하고 불편한 영역에 속한다.

페터 지역주민들하고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도 주민들과 함께하는 공연프로그램들을 많이 진행한다. 하지만, 주민들을 이해시키는 일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경우도 올해 9월에 ‘마을의 영웅(Held/in Dorf)’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동시대 공연예술을 처음 접해본 마을 주민들이 새로운 경향의 작업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였다. 어린이들을 위해서는 HEXE KLEX 같은 팀들이 프로그램을 준비했고, 유미코 요시오카(Yumiko Yoshioka), 이네스 부르도우(Ines Burdow), 아투르 쿠겔린(Arthur kuggeleyn)등이 참여했다. 이런 작업들이 지속되다보면 지역주민들도 우리가 하는 일들을 좀 더 이해 할 수 있는 상황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백기영 좀 다른 질문일 수 있겠는데, 베를린의 우파 파브릭(Ufa Fabrik)의 경우는 도심에서 예술가들이 생태마을 공동체를 만들고 이를 통해서 새로운 유형의 삶의 형식을 구축한 사례로 유명한데, 슐로스 브뢸린의 경우도 함께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서의 철학이나 실천하자고 하는 지향점이 있는지? 아무래도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서 함께 생활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주의 철학과 같은 이념을 필요로 하지 않은지.

페터 우파 파브릭의 경우는 환경적이고 대안적인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 근대적 삶이 만들어낸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대체에너지와 상하수도 체계를 도심 안에 만들어 낸 사례 중에 하나다. 하지만 우리는 농촌지역의 사회적 문제에 개입한다든지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들이 생태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긴 하지만, 특별히 유기농산물을 구입한다든지 그런 생산시스템을 위한 실천을 한다든지 하는 경우는 없다.

우리는 공연예술가들을 전문적으로 지원해주는 레지던시 기관으로서 자리 매김하고 있다. 함께 일하는 10명의 스태프들은 공연예술가들이 우리 공간에서 어떻게 하면 불편함 없이 새로운 실험들을 잘 진행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기관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정리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첫째, 실질적인 운영에 함께하는 파트너, 둘째는 다양한 예술적 활동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공영역에 우리의 활동을 알리는 역할이 중요하다. 파트너들은 우리의 운영철학을 이해하고 동참하는 사람들이라 제일 중요하고 이들과 함께하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활동은 이러한 동반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고. 바깥으로 알리는 매개활동은 우리가 고립된 공간에서 우리만의 만족에서 머물지 않고 사회화 할 수 있는 중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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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영 홈페이지를 보니 폴란드와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의 작가들과 교류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하고 있는 것 같던데, 이들 작가들의 작업에서 특별한 것이 있는지? 나는 지난달 폴란드 포츠난에 있는 미디에이션 비엔날레에 갔다 왔는데, 미디어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이 흥미로웠고, 이번 여름 베를린 비엔날레는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행동주의자들이 점령한 ‘오큐파이 비엔날레’라고 불렀다. 역시 폴란드 출신의 작가인 아투르 쥬미엡스키(Artur Zmijewski)나 정치적 행동주의 그룹 보이나(Voina)그리고 공동 큐레이터였던 죠안나 와르자(Joanna Warsza)가 참여했는데, 충격적인 행사였다. 동유럽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성향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페터 슐로스 뵈를린에 폴란드 작가들이 자주 오는 것은 우리가 폴란드 접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고 베를린보다 폴란드의 스체친이 더 가까운 도시이다. 공연예술 분야에서도 폴란드 작가들은 정치적인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 이유에서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동구권이 붕괴하기 이전인 사회주의 체제에서부터 연유한 것이기도 할 것이고 최근 동유럽의 정치적 상황이 아랍권의 민주화 시위와 맞물려 새로운 정치를 향한 염원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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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공.간] 베를린 우파 파브릭 (2010.09.03)


백기영 필자소개
백기영은 1969년 강원도 평창 봉평에서 태어나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미디어 예술을 전공하였다. 2006년 광주 의재창작스튜디오 디렉터를 걸쳐, 2007년 안산 원곡동에서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의 디렉터를 역임하였고, 2009년 경기창작센터 개관 시 부터 학예 팀장으로 일하다 2011년 12월부터 현재까지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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