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2년 10월 12일(금) 오전 10시 장소 앰버서더 호텔 cafe de chef

라틴아메리카로 불리는 중남미(中南美)는 세계 육지 5분의 1을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대륙이다. 북남으로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카리브해 연안 등 30여 개 나라가 이 권역에 속해 있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은 포르투칼어를, 나머지 나라는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제국주의시대 식민지 역사의 유산이다.

이 거대한 땅이 우리에겐 낯설다.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아득한 거리감이 근본 원인. 하지만 가까워하려 하지 않았던 심리적인 거리감도 무시하지 못한다. 문화예술 분야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고작 아는 것이라곤 화려한 분장을 한 늘씬한 미녀들이 공작새마냥 의상을 걸치고 거리를 주행하는, 브라질 리우 카니발 정도였다. 매우 이국적인 이미지로 고착돼 있다.

근자엔 걸출한 문학가 몇몇이 이 대륙의 찬란한 잠재성을 일깨웠다. 소위 &lsquo;마술적 리얼리즘&rsquo;으로 소설 작법의 혁명성을 과시한, <100년 동안의 고독>(1982년 노벨문학상)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대표적이다. 그는 콜롬비아 출신이다. 현대 소설가들에게 미친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로부터 그랬음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모옌(莫言, 중국)도 고백했다.

이런 일면에도 불구하고 중남미는, 여러 면에서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야 할 곳이다. 떠오르는 시장, 즉 &lsquo;이머징마켓(emerging market)&rsquo;이다. 시제로 치면 과거와 현재가 아닌 &lsquo;미래&rsquo;의 땅이다.

이 미답의 시장을 열고자 공연예술 분야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관문(gate way)은 어디일까?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진작 그 관문을 찾아 나섰고, 하나의 &lsquo;점&rsquo;과 연결됐다. 이번 &lsquo;문답&rsquo;의 주인공은 이 관문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남미 공연예술계의 큰손 셀소 큐리(Celso Curi, 62, 브라질)이다.

셀소 큐리

정재왈 서울아트마켓(PAMS)에 온 것을 환영한다. 한국은 처음인가?

셀소 큐리(이하 셀소) 그렇다.

정재왈 소감은?

셀소 서울의 삶의 양식이 브라질(상파울루)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유사성을 굳이 꼽으라면 &lsquo;영적(靈的)&rsquo;으로 통한다고 할까. 도시의 환경이 매우 빡빡하다는 느낌. 매우 공식적이며 예의 바른 일본(도쿄)과는 많이 다른, 투박한 생명력 같은 것이 느껴진다.

정재왈 이야기가 유사성으로부터 비롯되니 나도 편하다. 당신과 나도 커리어 면에서 유사성이 있다. 당신의 이력을 보니 저널리스트와 평론, 문화예술 기획 및 행정을 두루 경험했고 여전히 멀티태스킹하고 있다. 여러 역할이 상충돼 혼란스럽지 않나?

셀소 그렇지는 않다. 내가 찾아 나선 길이라기보다 다른 영역으로부터 초대받는다는 느낌으로 살았으니까. 10대 말부터 46년 동안, 포괄적으로 보면 문화예술이라는 한 영역에서 일했다.

정재왈 좀 구체적으로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열거하면?

셀소 우선 꼽으면, 국제적인 기구인 &lsquo;La Red&rsquo;의 회장직이 있다. 브라질 내 22개 문화예술기관의 교육은 물론, 음악 &middot; 연극 &middot; 무용 &middot; 시각예술 분야 기획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공연잡지 OFF의 편집자, 그리고 리오 데 자네이로 &middot; 상파울루 &middot; 쿠리치바시의 공연예술 페스티벌 디렉터로도 일하고 있다. 프로젝트 단위로 치면 7개 정도가 동시에 진행된다.

정재왈 역량을 떠나 열정에 탄복하겠다. 대개 공공영역에서 봉사에 가까운 일이다. 이 가운데 사적(私的)인 프로덕션은 없나?

셀소 애정을 갖고 있는 내 일이라면 공연예술 정보지 &lsquo;OFF&rsquo;(Guia de Teatro)를 발행하는 것이다. 기자 생활 중 1979년(39세)부터 시작한 출판 일이니 당연할 수밖에. 초기에는 소극장 실험극을 활성화하고 싶어서 극장과 잡지 출판을 겸했다. 브라질에 소극장 개념이 없을 때다. 이 무대를 통해 젊은 예술가를 등장시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덕분에 정부로부터 상도 받았다. 지금은 극장은 접고 출판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젠 본론으로 들어갈 때가 됐다. 그의 개인적인 사업은 사업이고, 우리와 관련된 일은 La Red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이미 이 기구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네트워크를 통해 몇몇 공연예술 작품이 중남미에 소개됐다. 넓은 관문을 확보한 셈이다. 큐리를 ';문답';에 소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참고로 La Red의 풀네임은 &lsquo;La Red de Promotores Culturales de Latinoam&eacute;rica y el Caribe&rsquo;(www. redlatinoamericana. com)이다. &lsquo;중남미기획자연합&rsquo;. 포르투갈어인 La Red는 영어로 The Net이다.

정재왈 La Red의 설립 배경과 역사, 활동 목표 등을 두루 말해 달라.

셀소 협회가 만들어 진 것은 1991년 5월의 일이다. 브라질의 고도(古都) 파라티(Paraty, 리오 데 자네이로)에서 발족했다.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연안 국가에서 활동하는 연극과 무용, 음악 분야 독립기획자들이 의기투합했다. 역내 활발한 정보교류와 네트워킹, 협업을 통해 &lsquo;컨템포러리&rsquo; 예술을 활성화하자는 취지였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멕시고,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페루 등을 망라했다. 현재 23개국 31개 그룹 및 독립제작자로 구성돼 있다. 최근 여러 가지 여건의 차이 때문에, 카리브 연안 국가들은 빠졌다.



셀소 큐리 셀소 큐리

정재왈 모든 조직의 운영에는 자금이 필요하다. 원활한 역내 협력을 위해서는 회원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필요할 텐데.

셀소 협회 창립 초기에는 취지에 공감한 미국 포드재단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연간 2만 달러씩 10년 간. 협회의 조기 안착에 큰 힘이 됐다. 지원 단절 이후 회원들의 회비(연간 2백 달러)에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재정은 넉넉하지 않다. 조직을 개편하고, 정부지원(브라질)을 받아내 보다 공신력 있는 비영리기관으로 거듭나는 게 내 임무이기도 하다.

정재왈 브라질은 인기 폭발한 룰라 대통령 집권기 국내외적으로 급성장했다고 들었다. 문화예술계에 그 영향은 없나?

셀소 물론 있다. 실질적인 지원 예산의 증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분위기이다. 브라질은 더 이상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문화예술의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페스티벌 등을 통한 국제교류에 매우 개방적인 자세가 형성되고 있다. 내가 직접 디렉팅하고 있는 쿠리치바 페스티벌에 한국 공연예술 단체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부탁한다. 21년 째 성장 중인 이 페스티벌에는 국내외 27&sim;28개의 단체들이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정재왈 다행이다. 쿠리치바시는 한국에 친환경 에코시티의 모범으로, 누구나 동경하는 곳이다. 그런 도시에서 축제를 성공시킨 당신이 부럽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라틴아메리카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의 공연예술단체가 당신이 이끄는 La Red의 네크워크를 통한다면 신뢰를 보장할 수 있는가?

셀소 그렇다. 매우 잘된 선택이라고 확신을 줄 수 있다. 회원들의 연대감도 깊고 내 개인적인 네크워크도 무시 못한다. La Red는 라틴아메리칸들이 많은 미국 마이애미(플로리다)까지도 커버할 수 있다. 물론 미국 내 &lsquo;전미공연예술연합(National Performance Network, NPN)&rsquo;와의 협력관계도 공고하다.

지난해 예술경영지원센터는 &lsquo;전략적해외진출사업(Center Stage Korea)&rsquo;의 일환으로 중남미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효과도 좋았다. 원일이 이끄는 바람곶과 김재덕프로젝트, 박순호, 이경은 무용단 등이 각각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브라질 등을 순회(touring)했다. 이미 형성된 La Red와의 관계망이 큰 밑천이 됐다.


사진

정재왈 낯선 길을 가려면 &lsquo;전략&rsquo;이 필요한 법. 한국 공연예술 단체들에게 라틴아메리카 공연 시장의 일반적인 선호 경향을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

셀소 앞서 협회의 창립 취지에서도 말했지만, 형식으로 보면 &lsquo;컨템포러리&rsquo;에 관심이 많다. 전통과 현대의 다양한 요소들을 믹스해서, 당대(contemporary)의 감각으로 풀어내는 작품에 열광한다. 대체로 유구한 원주민 문화의 전통이 있는 중남미에서 그런 열망은 있으나, 풀어내는 방법론은 약하다.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그런 면에서 매우 역동적이다. 우리는 그걸 배우고 싶다. 굳이 장르를 꼽자면, 전통을 바탕으로 한 한국음악 공연과 무용이 인상적이다.

지식보다 더 무서운 게 관록이다. 지식은 잠시 속일 수 있으되, 관록은 그렇지 못하다. 관록은 가끔 사물을 인식하는 직관으로 확인되는데 셀소 큐리에게서 그걸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눈에 한국 공연예술의 특장점을 읽어내는 촉수가 예민했다. 남미의 대평원 팜파스도 아마존의 밀림도 그가 이끄는 La Red를 통한다면 두려울 게 없다는 믿음 같은 게 생겼다.

셀소 큐리(Celso Curi / La Red 회장) 프로듀서, 문화 관리자, 출판인이자 저널리스트이다. 그는 또한 La Red(중남미 기획자 연합회), 라틴 아메리카 및 카리브 해 연안의 공연예술 프리젠터, 프로모터 네트워크의 회장이다. OFF Cultural Productions의 상임이사를 지내고 있으며 세나 브라질(Cena Brasil) 축제와 큐리티바(Curitiba) 축제의 기획자(큐레이터)이기도 하다.


관련 기사 링크
La RED & 브라질 SESC 사례연구 (2008년 기준) (2009.12.21)
레나타 페트로니_ NPN 국제교류 프로그램 디렉터 인터뷰(2011.2.23)
정재왈 필자소개
정재왈_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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