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지형도로부터 현대 미술작가들을 소개하고자 하더라도, 그들의 공식적인 언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종류의 작가적 변형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어떤 이야기도 하기 힘들다. 맥락이 없는 전시에서 미술작품들은 평면적으로 보이고, 전시는 동물원처럼 된다. 이것이 역사적인 언급을 드러내야 할 이유다. 즉, 배경이 되는 이야기들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부산비엔날레의 결과물이 지난 9월 22일 부산시립미술관, 부산문화회관, 부산진역, 미월드에서 관객들에게 공개됐다. 진행되고 있는 공사장과 같은 이른바 ‘아시바’로 얼기설기 엮은 전시장의 전경은 많은 관객들에게 이번 비엔날레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여타 비엔날레와는 다르게 41명이라는 소수의 작가 참여, ‘배움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일반인들과의 협업을 중심으로 참여와 소통의 장이라는 독특한 컨셉트를 제시했다.

전시감독인 로저 M. 뷔르겔은 ‘배움의 정원(Garden of Learning)’이라는 주제로 현대미술이 가지고 있는 개방적, 민주적 배움의 과정을 행사에 구현해 누구나 참여하고 즐기고 감상할 수 있는 비엔날레로 만들어냈다. 지난 2007년 카셀 도큐멘타 12를 총지휘해 세계 미술계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로저 뷔르겔은 이번 비엔날레에도 민주적인 참여와 소통이라는 화두를 던져 동시에 열린 광주비엔날레와 서울국제미디어비엔날레와는 차별화를 꾀했다. 행사가 후반기에 접어든 지금, 로저 M. 뷔르겔을 만나 이번 비엔날레의 최초 컨셉트와 큐레이팅 과정, 그 결과물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행사의 의의와 감회 등을 들어보았다.

이승민 만나서 반갑다. 개인적으로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으로 위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꽤 놀랐던 기억이 있다. 2007년 카셀 도큐멘타 같은 메이저 행사가 아닌, 아시아의 로컬비엔날레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번 비엔날레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로저 M. 뷔르겔(이하 로저 M.) 작은 전시들은 큰 전시에 비해 보다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는데 있어서 자유롭다. 부산비엔날레에서 발족한 ‘배움위원회’도 큰 전시에서는 제시할 수 없는 새로운 방법의 제안이다. 작은 전시들은 큰 스케일의 행사들과는 달리 관료주의 체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사실 나는 아시아의 국가들과 일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어쩌면 나는 전혀 지식도 없고 컨트롤 가능하지 않은 환경에서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내어 성공적인 전시를 이끌어 내는지를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승민 이미 행사가 시작되어 후반기에 접어들었다. 감회가 어떤가?

로저 M.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배움의 정원’이라는 주제에 애착이 많다. 특히나 배움위원회 멤버들이 가이드를 하는 전시 투어와 같은 형태는 이번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이자 여타의 비엔날레와 가장 뚜렷한 차별성을 갖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 행사를 통해서 나는 비엔날레 타입의 전시가 갖는 한계를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제시한 방법론이 단순히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최소 수년간 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로저뷔르겔

예술작품은 사람뿐 아니라 작품간의 소통도 필요하다

이승민 당신이 부산비엔날레 큐레이팅에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로저 M. 전시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거나 알고 싶은 소망으로 이루어진다. 이번 부산비엔날레를 통해 서로서로 각자로부터 배우는 과정의 특징을 담는 전시를 위해, 한국 관객들, 작가들, 내 자신이 함께 유기적인 전시 과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이승민 이번 비엔날레는 ‘협업’을 베이스로 한다고 들었다. 당신에게 왜 협업이 중요한가? 여기에 시민 참여 프로그램의 의미는 무엇인가? 또, 주제인 ‘배움의 정원’과 협업, 그리고 시민 참여프로그램을 어떻게 연결시켰는지 궁금하다.

로저 M. ‘배움의 정원’은 공개모집을 통해서 구성된 부산을 주축으로 한 50명의 지원자들로 구성되었다. 구성원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고등학생에서부터 주부, 부동산 업자 등 특별한 제약이나 자격요건은 없었다. 각각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면서 전시를 기획해 나갔다. 감독인 내가 그들에 비해서 예술에 대한 지식이 많았다면 그들은 나보다 부산, 한국에 대한 지식이 많았다. 시간이 흐르고 수 차례의 미팅과 토론을 거듭하면서 우리는 점차 하나의 조직이 되었다. 바로 그것이 배움위원회다. 이렇게 조직된 배움위원회가 이제는 전시 가이드로서 관람객들을 이끌고 있다. 나는 이들을 통해서 미약하게나마 이 복잡다단한 나라에 대한 지식을 얻고 고국으로 가게 되는 것 같다.

이승민 과거와 달리 전시 참여작가의 수가 대폭 줄었다. 작가 선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로저 M. 40명이 넘는 수의 작가들과 심도 깊은 질문과 대화를 나누어 작가를 선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별한 작가 선정 기준은 없었다. 그저 내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도전적이고 의미 깊은 작업을 하는 작가들 그리고 수년간 함께 작업을 해 왔던 작가들이 자연스레 참여작가가 되었다.

이승민 당신은 전시 개막 전 "예술작품은 사람뿐 아니라 작품끼리도 소통해야 한다"며 작품 존재에 포커스를 맞추는 배치를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좀더 설명해 준다면? 작품끼리의 소통이란 어떤 의미인가?

로저 M. 작품을 디스플레이 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많은 경우 작품이 함께 놓여서 서로에게 시너지가 되어 의미가 풍부해지기도 하고 또 반대로 서로의 작품에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들을 볼 수 있다. 나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lsquo;1+1=3&rsquo;이 되는 전시의 형태를 찾고자 했다. 또한 예술사학자의 관점에서 작품들을 서로 비교하면서 바라보고자 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미니멀리즘적인 작업이 한국과 서구의 작가들을 통해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공통점은 무엇이며 차이는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김용익과 존베어의 작품이 그 예다. 혹은 &lsquo;기념비적&rsquo;인 것에 대한 서로 다른 개념을 찾는 것이다. 함경아의 <오데사의 계단(Odessa Stairs)>이나 사카린 구루에온의 <자각의 시대에 대한 기념비(Monument of Awakening Era)>, 곤잘로 디아즈의 <Ngen-f&uuml;ta winkul>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함경아_오데사의 계단(Odessa Stairs)

▲ 함경아_
오데사의 계단(Odessa Stairs)

사카린 구루에온(Sakharin Krue-On)_자각의 시대에 대한 기념비(Monument of Awakening Era) 곤잘로 디아스(Gonzalo Diaz)_ Ngen-futa winkul
▲ 사카린 구루에온(Sakharin Krue-On)_
자각의 시대에 대한 기념비
(Monument of Awakening Era)
▲ 곤잘로 디아스(Gonzalo Diaz)_
Ngen-f&uuml;ta winkul
(사진: 부산비엔날레 제공)

이승민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서 당신이 세상, 혹은 미술계에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었나?

로저 M. 딱히 그런 메인 테마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만약 있다고 한다면 전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세상의 복잡다단함이 아닐까?

이승민 국내의 다른 비엔날레가 동시기에 열렸다. 타 비엔날레와의 차별성은 어떻게 노렸나? 다른 비엔날레와 준비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있었나?

로저 M. 다른 비엔날레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없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포커스는 바로 부산이었다. 그리고 배움위원회의 사람들, 유기적으로 전시를 만들면서 샘솟는 도전정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비엔날레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여타의 다른 비엔날레가 개최된 뒤 직접 그들의 노력의 결과를 잘 살펴볼 수 있었고, 이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승민 한국에는 1995년 시작된 광주비엔날레와 2002년 시작된 부산비엔날레, 2000년 미디어 시티 등 같은 해에 동시에 굵직굵직한 비엔날레가 열린다. 그 외에도 비엔날레가 많다. 국내에서는 이렇게 동시기에 열리는 비엔날레에 대해 시너지 효과가 있다 라던가 소모적이라는, 정반대의 의견 등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이러한 여러 비엔날레를 이번에 접했을 텐데 어떤 인상을 받았으며, 이에 대한 의견은 어떤가?

로저 M. 나는 비엔날레 타입의 전시를 일종의 질병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비엔날레 형식의 전시보다 중요한 것은 공공미술관의 설립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미술관에서 관객에게 수준 높은 퀄리티의 프로그램들을 제공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부산의 아트씬에 진심으로 필요한 것이다. 2년에 한번 열리는 이벤트는 깊은 인상을 주기 어려운 법이다.
사진 사진

이승민 이번 비엔날레와 마찬가지로 작품의 병치 전시를 2007년 카셀 도큐멘타에서도 볼 수 있었다. 빌헬름회에에서 전통작품과 현대미술을 동시에 배치해 보여준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다양한 시각예술 잡지를 도쿠멘타의 주제에 맞추어 발간하는 등 당시에 열리던 비엔날레와는 차별화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로저 M. 카셀 도큐멘타 12에서 전통미술 작품과 현대미술작품을 함께 보여줄 필요가 제기되었다. 왜냐하면 서구의 관객들이 서구가 아닌 세계, 즉, 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의 현대 역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구가 아닌 세계의 문화적 지형도로부터 현대 미술작가들을 소개하고자 하더라도, 그들의 공식적인 언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종류의 작가적 변형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어떤 이야기도 하기 힘들다. 이런 맥락이 없는 전시에서 미술작품들은 평면적으로 보이고, 전시는 동물원처럼 된다. 이것이 역사적인 언급을 드러내야 할 이유다. 즉, 배경이 되는 이야기들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번 부산비엔날레에서 이루어진 동서양의 작품 병치 또한 맥락적인 면에서 필요한 작업이었다.

이승민 지난 카셀 도큐멘타에서 부인, 루스 노악(Ruth Noack)과 공동 큐레이팅했다. 이번에는 혼자 했는데, 혹시 그녀가 이번 큐레이팅에 영향을 준 점이 있는지? 그리고 개인적인 질문인데, 부인은 잘 있는가? 요즘 뭐하는지? (웃음)

로저 M. 카셀 도큐멘타 12에서 큐레이팅을 맡았던 루트 노악(Ruth Noack)은 지금 런던의 로얄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큐레이팅 프로그램 과정의 학과장으로 있다. 그리고 이번 비엔날레의 &lsquo;배움의 정원&rsquo;에서도 어느 정도 역할을 수행했다. 그녀는 작품 설치와 배치에 대한 청사진을 만들었다. 카셀 도큐멘타 12에서 교육 담당을 역임했던 울리히 쉐트커(Ulrich Sch&ouml;ttker)는 부산비엔날레의 교육 프로그램을 짰다. 그리고 전시의 가이드가 된 배움위원회 멤버들을 가르쳤다.

이승민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로저 M.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새로운 타입의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연구 조사역으로, 전시 공간 담당으로 말이다. 이 새로운 기관은 요한 야콥스 뮤지엄으로, 2013년에 스위스 취리히에서 개관할 예정이다. 야콥스 뮤지엄은 세계 무역 루트의 역사를 살피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이곳에서 작가들은 학자들과의 협업을 통해서 작품을 제작할 예정이다.


로저 M. 뷔르겔 1962년 출생. 전시기획자이자 작가인 그는 빈의 게네랄리 파운데이션에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展>(2000), <주제와 힘展>(CHA 모스크바, 2001), <정부展>(쿤스트라움 데어 유니버시테트 뤼네 부르크 외, 2003~2005) 등의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 바 있다. 2007년 카셀 도큐멘타 12에서 부인 루트 노악과 공동 큐레이팅으로 비엔날레의 새로운 전시 형식을 제시해 세계 미술계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승민 필자소개
이승민은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했다. 서미갤러리 큐레이터와 국제갤러리 디렉터를 역임했다. 공역서로 『This is Art』가 있다. [노블레스], [중앙 선데이] [예술경영] [문화+서울] 등 다수의 잡지에 글을 기고했다. 현재 기획자 겸 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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