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을 바탕으로 소통하여야 한다
다차원적 프로그램을 준비하라

우리는 지금 만남이 필연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교통과 통신, 미디어 등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다른 문화권과 직·간접적으로 소통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전통음악가라고 할지라도 전통음악만 연주하거나 한국에서만 예술활동을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전통음악을 더욱 더 잘 이해하고, 보존하고, 공유하기 위해서도 소통과 융합 등을 통해 다른 세상이 몰두하거나 변화하는 추이를 알아야 한다. 사실 한국문화와 문명에 있어서 ‘전통’은 진보적 가치를 담고 있는 단어이다. ‘멈춤’이나 ‘보존’의 뜻이 아니라 ‘본질을 전함’이라는, 즉 본질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세상의 변화에 따라 ‘겉’이나 ‘색’은 끊임없이 바꾸어나가는 것이 ‘전통’에 대한 참다운 이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에는 이미 이러한 진보적 패러다임이 담겨져 있기에 우리가 세상을 좀 더 이해하고 공부한다면 우리 음악의 본질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융합도 시도할 수 있고, 우리 예술과 문화를 그들에게 전할 수도 있다.

정체성을 바탕으로 소통하여야 한다

단, 여기에는 놓치지 말아야 할 대전제가 있다. “정체성을 바탕으로 소통하라”는 것이다. 소통하지 않는 정체성이 ‘고립’이라면, 정체성을 갖추지 않은 소통은 ‘야합’이 되고 만다. 이는 세계를 상대로 우리 음악의 가치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우선 한국음악의 겉모습, 즉 형식이나 기법 등이 아니라 본질적 가치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갖추어야 함을 뜻한다. 세계는 우리에게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문화적 패러다임을 기대하고 있다. 세계가 우리 음악에 귀를 기울이게 하려면 그들의 결핍이 무엇인지를 간파하여야 함과 아울러 우리 음악에는 그들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문화적 예술적 가치가 어떤 것이 있는지를 설명하고 보여줄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 음악에 대한 인식이 표면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면 세계의 그 누구이든, 그 어떤 문화권과도 대등하고 자유로운 소통을 이룰 수 없다. 또 하나 유념할 점은 새로운 소통을 위하여 새롭게 받아들이거나 드러낼 예술적 영감을 제대로 소화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적 영감이란 마치 음식과도 같아서 제 아무리 맛이 있어도 먹은 후에 소화시키지 못하면 큰 문제가 되고 만다. 진정한 만남이란 DNA 결합의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표피적 만남을 목표로 하거나 단편적 아이디어로 소통을 준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악을 통한 해외에서의 활동 중 공연은 가장 중심에 있게 마련이다. 좋은 공연물은 세상 사람들을 자극하는 문화적 촉매제로 작용한다. 하지만 공연은 비용이 많이 들면서도 휘발성이 높은 단점이 있다. 그러므로 공연활동만으로 세계 진출의 목표로 삼는 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이다. 앞으로 국악의 해외진출을 꿈꾸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공연과 아울러 교육활동에도 관심과 역량을 축적하여야 한다. 여기에 한 걸음 나아가서 그 공연과 교육활동을 다차원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해외에서 활동을 하다보면 준비된 것 이외에도 즉흥, 다원, 융합 등 다양한 공연형식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교육도 하향식, 주입식 전달이 아니라 ‘가치의 공유’라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강연, 워크샵, 공연과 강연의 결합, 질의응답 등 다차원적으로 프로그램을 준비하여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 음악을 세계에 전하고 나눔에 있어서 다차원적인 융통성을 확보하라는 뜻이다.

‘국악 한류 아카데미’(가칭)가 필요하다

이제까지는 해외의 진출을 꿈꾸는 젊은 국악인들에게 전하는 당부였다. 하지만 이들에게 구체적이면서도 실용적으로 한국전통문화와 예술의 본질적 가치를 전하고, 융합 혹은 실험적 예술활동의 이면을 경험하게 하고, 창작을 지원하고, 공연 현장을 운영하는 감각을 길러주고, 예술기획과 경영을 이해시키고, 교육역량을 북돋우고,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등의 역할을 담당하는 사회적 교육기관이 없는 실정이다. 기존의 학교에서도 국악의 해외진출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은 전무한 실정이다. 젊은 국악인들이 이러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는 상황에서 ‘좋은 작품 만들어오면 지원해 줄게’ 식의 지원책은 솔직히 필자에게는 무책임하게 들린다. 사실 평소 필자는 ‘한류’라는 표현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쓰이는 느낌이 있어서이다. 하지만 해외로 진출하고자 하는 젊은 국악인들을 위해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연수기관이나 지원기관이 하나쯤은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 편의상 사용하기로 한다. 부디 국가나 사회가 이러한 기관을 만들어서 국악의 해외진출을 위한 근원적 지원책이 마련되길 바란다.

김동원 필자소개
김동원은 공학도를 꿈꾸다가 스무 살에 만난 한국전통예술에 몸을 던져 행복하게 외길을 걷고 있다. 현재 원광디지털대학교 전통공연예술학과 교수, 요요마&실크로드앙상블 단원으로 있으면서 세계 각지에서 공연과 강의를 하였고, 호주의 재즈드러머 사이먼 바커와 함께 다큐멘터리 영화 ‘땡큐, 마스터 킴’(Intangible Asset Number 82)에 출연한 바 있다. 어린이 그림책 『사물놀이 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wally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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