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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축제기획자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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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7-03-24 조회수 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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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기획자의 역할

김정남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사무국장)

예술 경영이란 학문 혹은 용어가 회자된 지가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지만 요즘은 쉽게 이런 공부를 하고, 또 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때로 그들은 매우 진지하게 학문적으로 접근하기도 하고, 혹은 나이에 비해 화려한 경력으로 무장하고 문화 산업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들을 만나면 내 짧은 경력에 불구하고 어떤 얘기들을 전해줄까 잠시 생각해 봤다. 아마도 요즘처럼 인터넷에 많은 정보들이 노출되어 있는 상황에선 구체적인 정보보다는 축제를 치러오면서 느낀 소견을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 가는 게 도움이 되리라 싶다.

축제기획자의 역할보기... 서울 국제 공연 예술제라는 거창한 이름의 축제는 매년 가을 3주 동안 대학로를 중심으로 공연 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한국의 대표적인 행사라고 간략히 소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계의 다양한(장르, 크기, 성격) 공연들이 앞뒤를 다투어 한국을 찾는다. 이런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으로 부딪힌 국제적인 공연 환경은 때론 매혹적이기도 하고 때론 실망을 주기도 한다. 세계적인 유명세에 비해 왜소한 예술가를 만나기도 하고, 가끔은 숨어있는 보석 같은 공연을 보고,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감정과는 관계없이 모든 팀들을 최대한 공정하게 효과적으로 보살피는 것이 축제 기획자의 역할이다. 축제 기획자를 역할 별로 간단히 나눠보면, 처음 축제에 참여할 때는 자원 봉사의 형태가 대부분이다. 축제마다 차이가 있지만 자원봉사는 통역이 주요 역할이다. 그러니까 내한한 팀과 축제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다. 흔히들 통역이 단순한 언어적인 기능이라고 폄하하기 쉽지만 사실은 통역의 태도나 뉘앙스에 따라 공연의 분위기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팀과 잘 융합이 되면서도 적절하게 축제의 창구 역할을 한다면 그보다 좋은 경우는 없다. 덤으로는 실질적인 책임이 없기에 맘껏 축제를 즐길 수도 있다. 그들이야 말로 즐겁게 일을 하는 축제의 기본정신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축제가 정말 좋아졌다면 심각하게 직업으로 고려하는 단계에 이르기도 한다. 그래서 인턴쉽이나 직원으로 축제 사무국의 멤버가 되는 것이다. 그때는 자원 봉사시절의 낭만과 외국인과의 이국적인 대화는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되나, 이미 책상 앞에 쌓인 엄청난 서류 작업은 그런 틈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다. 흔히 이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은 외국팀들의 국내 혹은 아시아 투어를 어렌지하는 것이다. 그들의 아시아 투어 혹은 서울 근교의 엑스트라 공연을 엮어내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만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국내(local)와 아시아 지역(regional)의 네트워크이다. 이 과정은 이메일을 통해서 정보교환을 하면서 시작되지만 역시 직접 만나서 어떤 성향의 공연을 선호하는 지 서로 궁합을 맞춰봐야만 한다. 그런 만남들이 반복되면서 일정 정도 같은 성향을 가진 축제나 공연장들을 만나게 되고 그런 관계는 장기적으로 발전되어 가기 시작한다. 국내에서 축제 기획자들이 정기적으로 공연장이나 축제에서 만나 정보교환도 하고 네트워킹을 하는 것처럼, 아시아도 크고 작은 그룹들이 공식적인 혹은 비공식적인 모임을 이루어 움직이고 발전해간다. 그런 모양새를 읽어내고 선도해내기 위해선 주요 축제나 아트마켓 등에 정기적으로 나가서 업데이트도 하고 업계의 동향도 따라가야 한다. 그럴 경우 중요한 것은 외국어 능력보다는 (물론 기본적이고 정확한 소통은 필수) 자기가 혹은 자기가 속한 단체가 추구하는 예술적 방향을 정확히 제시하고 토론할 수 있는 예술적 비전이라고 생각이 된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란 대개가 다른 무엇보다도 예술이 좋아서 그 꿈을 나누기 위해서 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로 생각하는 네트워킹이란 술을 무쟈게 마시고 개인적인 친분을 쌓는 것이라는 인상을 가지기 쉽다. 물론 그것도 빠질 수 없는 기쁨이긴 하지만 여전히 국제 네트워킹에서 더 주요한 것은 비슷한 예술적 비전의 그룹들을 만나서 준거 집단을 이루어 서로 업데이트 해 나가는 것이란 소견이다. 다른 대륙에 사는 예술가들은 혹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선 어떤 방식으로 세계와 만나고 싶어하고 그들의 작품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축제 기획자들은 어떻게 서로 도울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이 시작점이 된다면 그 결과는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문화가 외교의 일부분이긴 하고 여전히 경제적인 부분이 프로젝트의 성사를 좌우하기도 하지만, 기본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술가의 강렬한 목마름에서 시작된 고유의 목소리를 지켜주고자 하는 기획자들이 있는 한 좋은 작품은 계속해서 생산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능한 축제기획자 길러내기 ... 그런 축제 기획자를 양성해내기 위한 우리의 현실은 얼마나 준비가 되었을까? 최근 체계적으로 전문 인력을 양성해내고자 하는 시도들이 몇몇 돋보인다. 그 중 하나가 예술 경영 지원 센터에서 하는 사업들이다. 바야흐로 우리도 세계 시장에 어깨를 당당히 겨눌 수 있는 시기가 멀지 않았다고 본다면 지나친 낙관론일까? 그러기 위해선 크게는 세가지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첫째는 전문성의 배양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 그 방향은 개인마다 단체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공부하길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 순간 예술은 치열하지 못한 산업으로 전락하고 만다. 두번째는 체계적인 네트워킹을 통한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 가까운 지인에 기반한 모임이 아니라 예술적 성향에 따른 관계들의 재편이 필요하고 그들끼리는 철저하게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특히 외국 작품을 초청할 때 이런 정보 교환은 상호간에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마지막으론 이런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력을 길러낼 수 있는 전문 교육의 필요성이다. 야무진 꿈과 두뇌로 뛰어든 젊은 인재들을 교육시키고 그들이 연속성을 가지고 일을 하려면 단계에 따른 교육이 뒤따라야 한다. 근자에 참관한 축제에서 로빈 아처 (Robyn Archer)의 연설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성악가 출신으로 공연 예술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해 온 호주의 축제 기획자이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기조 연설(keynote address)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온 그녀의 모습은 뚱뚱한 중년 아줌마의 그것이었다. 나는 약간 실망한 심정으로 그녀의 드레스 코드(검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분석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이어진 그녀의 연설은 내 온 맘을 사로잡았다. 만국의 예술가들이여, 깨어나라, 죽도록 꿈꾸어라! 마치 그녀가 내 귀에 대고 그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사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나긋하고 친절했으며 연설 말미는 아름다운 아리아로 끝이 났다. 순간 정신이 번득 들었다. 아…나는 예술을 위해 이렇게 졸리운 눈을 부비며 10시간 넘게 날아와서 여기 앉아 있구나… 위에서 열거한 모든 얘기들이 예술을 향한 열정을 담보하지 않는다면 모두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당신과 나의 숨죽인 가슴이 모여서 작은 내를 이룬다면, 그 속에서 예술가들이 오아시스를 발견한다면 이 일은 할만하지 않을까 싶다.

필자약력: 필자 김정남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였으며, 극단 화동연우회의 창단회원이자 사무국장으로서 현재까지 16회에 이르는 공연의 제작, 기획에 참여하였다. 현재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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